매일신문

[야고부] 바람재

대중가요 노랫말로 더러 시비가 인다. 고복수 '짝사랑' 중 슬피 우는 '으악새'를 두고는 그게 동물(새)이 아니라 식물(억새)이란 주장이 있었다. 함경도 출생으로 알려져 온 백난아 노래가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고향을 그리워하자 왜 북쪽 아닌 남쪽이며 찔레꽃은 다 흰데 무슨 소리냐는 이도 있었다. 하나 진정 잘못된 것은 오히려 이 비판들인 듯하다. 으악새는 왜가리(새)의 사투리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고, 찔레꽃에는 귀하나마 붉은 게 분명 있기 때문이다.

반면 '추풍령'을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가'며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고개라 한 노랫말은 아무리 꾸중 들어도 할 말 없을 분명한 엉터리다. 白頭大幹(백두대간, 소위 소백산맥) 상에 있는 데다 그런 이미지까지 부여되고 보니 누구라도 굉장히 높은 게 추풍령이라 오해하기 십상이나 실상은 그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추풍령 높이는 기껏 해발 230여m다. 높기는커녕 놀랍게도 백두대간 산줄기 중 가장 낮은 지점이다. 710m나 되는 팔공산 한티재는 물론 320여m의 대구예비군훈련장 앞 능성재(고개)보다도 낮다. 그러다 보니 노랫말 따라 현장을 찾았다가 정작 어디가 고갯마루인지 분간조차 못했다는 사람까지 있다. 김천 쪽은 좀 경사졌으나 고개 위는 영동 추풍령면 소재지 큰 마을이 펼쳐져 있는 평지여서 더 그럴 것이다.

秋風嶺(추풍령)을 우리말로 풀면 '가을바람재'쯤 될 터이나, 인근에는 그냥 '바람재'(810m)라는 것도 있다. 백두대간을 남쪽서부터 걸어 오르자면 바람재가 먼저 나타나고 거기서는 50여 분 만에 황악산(1,111m)에 오를 수 있다. 내려서면 掛榜嶺(괘방령'310m), 다시 오르면 가성산'눌의산(743m), 내려서면 추풍령 순이다. 바람재는 잡목 없이 탁 트이고 아늑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상당히 널찍한 고원이다.

산림청이 바람재에 있는 옛 군사 시설물을 철거해 전국 산림 복원 시범장으로 삼겠다고 얼마 전 발표했다. 황악산을 사이에 두고 이 재와 병립한 괘방령에는 그 며칠 전 김천시청이 25t이나 되는 표석을 세웠다. 가수 백난아는 겨우 출생지가 제주도로 바로잡혀 작년 그곳에 기념비가 세워지더니 다음달엔 기념가요제도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재산이 조금씩 불어 가는 모습들일 것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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