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민 혈세는 '펑펑'…버스조합 감독은 '눈치'

[버스준공영제 이대로 안 된다] (상)대구시 안일한 교통정책

▲ 대구 시내버스 준공영제 실효성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10일 오전 중구 신남네거리 부근에서 시내버스들이 전 차선을 막고 운행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대구 시내버스 준공영제 실효성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10일 오전 중구 신남네거리 부근에서 시내버스들이 전 차선을 막고 운행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

대구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태어난 지 만 세돌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구시는 버스준공영제의 관리·감독기관인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대구버스조합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각종 사업마다 발목을 잡히고 있다. 이처럼 버스조합의 부도덕성과 대구시의 관리감독 기능 상실로 인해 버스 준공영제를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버스준공영제 현주소는?

대구시가 추진 중인 신교통카드 사업을 놓고 버스조합과 기존의 대경교통카드사업자인 ㈜카드넷이 벌이는 다툼이 버스준공영제의 극명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8일 오후 4시 대구지방법원 42호 법정에서 ㈜카드넷이 4월 중순 대구버스조합을 상대로 (신교통사업자와의) 계약체결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방청석에는 정장 차림을 한 대구시, 카드넷, 신교통카드 사업자 관계자 10여명이 굳은 표정으로 변호인단의 갑론을박에 귀를 기울였다. 50여분간 진행된 신문에서 법원이 ㈜카드넷의 가처분 신청취지를 대부분 받아들이는 내용으로 화해가 성립됐다.

대구지법 제20민사부(부장판사 허부열)는 "버스사업조합이 ㈜카드넷의 동의없이 신교통카드시스템 구축사업과 관련해 제3자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화해했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건으로 화해가 성립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원은 "통상 서로 다툼이 생기면 법원에서 판결로 가리지만 이번의 경우 쌍방의 의사가 일치했기 때문에 판단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버스조합이 카드넷의 가처분 신청을 방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얘기였다. 버스조합이 ㈜카드넷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다 일부 조합 관계자들은 주식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해 성립으로 ㈜카드넷은 영업권을 보장받게 됐지만 대구시가 야심 차게 추진해 오던 신교통카드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버스조합은 제3자와 계약을 맺을 경우 1일 1억원, 기존 단말기를 ㈜카드넷 의사에 반해서 이전 혹은 철거를 하면 1일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대구시는 ㈜카드넷과 버스조합이 10년 영업권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면 계약을 한 사실을 알고도 신교통카드 사업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뒀고, 버스조합은 자신들의 잇속을 불리기 위해 대구시의 신교통카드 사업을 공공연하게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업자들 손에 맡겨진 준공영제

대구시는 8일 ㈜카드넷과 버스조합 간 가처분 신청 화해가 성립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며 여유를 부렸다.

대구시는 법원에서 화해가 성립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는 본안 소송 제기와 함께 이면계약, 주식매각 등과 관련해 최준 전 버스조합 이사장을 형사고발 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소송에 상관없이 최근 삼성SDS·BC카드 컨소시엄 등 신교통카드 사업자들에게 이번 가처분 신청과는 별도로 사업 추진 계획서를 받았고 신교통카드를 운영할 법인 설립에 착수했다"며 "연말부터 가동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차질없는 신교통카드 사업을 위해 업자들을 불러 모아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해 성립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대구시의 선택 폭이 좁아진다. 이 때문에 대구시가 ㈜카드넷과 신교통사업자들 간에 합의를 주선하면서 이권을 챙겨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면 계약이 효력이 없다거나 신교통사업자와 버스조합 계약을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인데도 사업자끼리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또 다른 당근을 ㈜카드넷에 줘야 한다는 것. ㈜카드넷 측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은 영업권을 보장받기 위한 방어적 차원이었지만 교통카드 전국 호환 등 기존 카드넷 사업을 시가 지원한다면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이번 신교통카드 사업을 보더라도 대구시가 얼마나 준공영제에 대해 무책임한지 여실히 드러났다"며 "또다시 세금을 동원해 업자들을 달래 이권을 주고 사업을 추진해 나갈지 걱정된다"고 했다.

◆대구시는 왜 아무 말 못하나?

대구시는 이번 카드 사태처럼 번번이 대구 버스조합에 발목을 잡혀왔다. 버스준공영제가 돈만 쏟아부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이유다. 대구시가 버스준공영제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었고, 그간 버스조합의 관리감독도 소홀히 했다.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서울시 등 다른 시들은 자발적으로 준공영제를 시행했지만 대구시는 버스 파업 등에 굴복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떠안았다"며 "서비스 의식에 대한 개선 의지도 없고 파업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준공영제 정책을 펴나가다 매번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질책했다.

특히 시는 버스조합의 독단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대책없이 끌려다니고 있다. 실제 2006년 버스준공영제 시행 후 준공영제 연차 수당은 버스업체가 줘야 함에도 버스회사가 장부를 조작해 대구시로부터 돈을 챙겼다. 이 당시 대구시는 인건비 지급내역서 등에 대한 검증절차 없이 업주들이 청구하는 대로 지급했다. 버스업체 한 관계자는 "버스업계 내부에서 이런 부풀리기 사례가 적지 않다"며 "대구시의 감사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스조합은 2006년과 2007년에도 수익금 공동관리 지침에 불만을 표시하며 수입금 공동계정에 적립해야 할 시내버스 외부광고 수입금 10억여원을 수개월 동안 입금하지 않았다. 대구시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대구시가 버스업체에 돈을 쏟아넣고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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