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잊혀졌던 고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어민들은 20년 넘게 고래잡이가 금지돼 몇 년 사이 동해에 고래가 부쩍 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물에 걸린 큼지막한 고래가 뉴스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울산 장생포 어민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솎아내기'식 고래잡이를 허용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고래잡이가 부활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바다의 로또 '고래'
고래는 1986년 이후 잡이가 금지돼 있지만 혼획(잡으려는 어종에 섞여 다른 어종이 잡히는 것)의 경우는 허용되고 있다. 어민들이 쳐놓은 통발이나 자망에 우연찮게 걸려 죽은 경우는 판매가 가능한 것. 보통 고래는 멸치나 오징어 등을 즐겨 먹는데 동해안에 이 같은 먹이군이 형성돼 있다. 이런 먹이군을 따라 이동하다 그물에 걸리면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숨이 막혀 질식사하는 것.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나마 대부분 그물에 걸리는 고래는 1, 2m 정도의 돌고래류. 이 때문에 고래고기로 인기 높은 밍크고래 가격은 비싸게 불리고 혹 그물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민들은 바다의 '로또'가 잡혔다고 흥분한다.
현재 길이 1, 2m 정도의 돌고래는 평균 100만~300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 반면 4, 5m 이상의 밍크고래는 평균 2천만~3천만원에 판매된다. 밍크고래는 길이와 덩치, 보존 상태 등에 따라 많게는 억단위까지도 값이 매겨진다. 지금까지 사상 최고가는 2004년 4월 울산 부근에서 잡힌 7m의 밍크고래가 기록한 1억2천365만원이다. 이렇다보니 해경은 어민들이 혼획을 가장한 불법 포획도 적잖게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어민들은 고래가 잡히면 반드시 해경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크레인을 통해 인양 작업을 하고 금속탐지기와 육안을 통해 검사를 한다. 혹 불법 고래잡이를 했는지 확인하는 것. 현행법상 고래를 불법 포획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혼획으로 확인되면 검사 지휘를 받고 최종적으로 수협위판장에 경매한다.
포항해양경찰서 최문기 수사계장은 "과거엔 절차가 복잡해 고래 위판까지 3, 4시간 이상 걸려 고래 육질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어민들의 손해도 컸다"며 "최근엔 검사지휘를 받기 전에라도 혼획이 확실하면 고래 피를 모두 빼낸 다음 냉동 보관을 먼저 실시하도록 해 시간을 대폭 줄였다"고 밝혔다.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동해안 일대(포항 주변)에 잡힌 고래의 수가 2007년엔 밍크고래 37마리, 돌고래 367마리 등이었고 2008년엔 밍크 35마리, 돌고래 269마리 등으로 조사됐으며 올해는 5월 말 현재 밍크 14마리, 돌고래 115마리로 나타났다.
◆개체수 늘었나
요즘 들어 어민들은 과거에 비해 고래가 부쩍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1986년 포경금지 조치 이후 인위적인 잡이를 20년 넘게 하지 않다보니 개체수가 당연히 급증했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수면 위로 보이는 고래 수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는 것.
최근에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가 4월 말부터 1개월여 가량 시험조사선을 이용해 동해안의 고래류를 눈으로 조사한 결과, 밍크고래 51마리, 참돌고래 2515마리 등 고래류 총 2천589마리가 관찰됐다. 특히 밍크고래는 2001년 이후 가장 많은 개체를 발견했다는 것.
연구소 측은 이번 조사결과를 근거로 동해~황해~동중국해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밍크고래의 예상 분포량은 약 1만4천마리 수준이며 이는 고래잡이가 활발했던 1970년대 초반 자원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 개체수 증가라고 단정짓기는 성급하다는 의견이다. 고래는 넓은 바다를 회유하기 때문에 단순히 일부 지역만 조사해서는 과학적 입증이 어렵다는 것. 김장근 소장은 "밍크고래의 경우 분포범위가 북서태평양과 동중국해, 오호츠크해 등으로 넓게 퍼져있는데 이번 조사는 아직 북한이나 중국, 오호츠크해 및 일본 동해안의 분포 정보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더구나 몇년 동안 눈으로 조사해서 늘었다거나 줄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잡게 해 달라
최근 부쩍 동해안 일대에 고래가 늘었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울산 장생포 어민들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고래잡이를 허용해달라는 요구 또한 거세지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솎아내기'식 고래잡이를 허용해달라는 것. 솎아내기를 허용하면 급증한 고래로 인한 다른 어족의 고갈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고 어촌 경제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요구는 울산 장생포항에서 강하다. 장생포항엔 고래잡이 허용해달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는데 더욱이 어민들은 이달 초부터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장생포동발전협의회 서두수 회장은 "동해를 같이 사용하는 일본의 경우는 연구 목적으로 매년 수천 마리의 고래를 잡고 있다"며 "바다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대형고래를 제외하고 돌고래와 밍크고래 일부를 잡도록 허용하면 생태계와 지역 어민들 모두에게 혜택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울산 남구청장이 이달 중순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에 참석해 고래잡이 허용을 공식 요구할 예정이다.
환경단체는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측은 동해안에 서식하는 고래 조사가 전면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포경을 허용하면 국제적으로 한국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
포경 허용국이 되려면 해당 국가 해역의 고래 개체수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IWC 과학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과학위는 다시 5년간 정밀 검증을 거쳐 IWC 총회에 정식 의제로 상정하면 총회에서 투표를 거치는데 회원국(72개국) 4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포경 허용국이 된다. 일본은 1992년까지 과학적인 조사를 마친 뒤 1994년부터 절차를 밟기 시작해 2003년부터 연구용 포경 허용국이 됐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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