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다의 로또, 고래]고래 해체 전문가 이상식씨

12가지 맛 난다는 고래고기

울산 장생포에서 만난 이상식(63)씨. 검붉게 그을린 얼굴만 봐도 뱃사람이라는 것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고래 해체 전문가이면서 고래잡이 역사의 산 증인.

이씨가 고래와 인연을 맺은 때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모르고 고래잡이 배를 탔죠. 60년대 당시만 해도 목선이었어요. 60년대 말이 돼서야 철선이 나왔죠. 목선은 속력이 없으니까 고래들을 유인하는 방법을 사용했어요. 바다에 떠 있으면 고래가 배 주위에 와서 장난을 치면서 놀거든요. 그때 갑판장이 대충 올라오는 지점을 예측해 잡는 방식이었어요. 반면 철선은 소나로 음파를 쏘아 고래들이 그 음파를 못 참고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쫓아가서 잡는 방식이죠. 과거 방식이 좀 더 정겹다고 할까요."

고래 해체는 70년대 초부터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씨가 처음 해체 작업을 한 것은 4m 정도의 밍크고래. "고래잡이 배를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체할 줄 알지만 부위별로 정확하게 자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죠. 칼질 한번 잘못하면 수백만원이 날아가니까요." 당시 밍크고래는 일본으로 수출을 많이 했다. 좋은 부위는 대부분 일본행이었던 것. 그렇다 보니 포장 상자에 정확하게 딱 맞게 고기를 넣는 것이 관건이었다.

"고래 해부는 목부터 시작이죠. 목을 잘라 빨리 상하지 않게 피를 다 빼야 하죠. 그런 뒤 가슴 근육을 떼어내고 넓적뼈를 떼낸 뒤 등살부터 꼬리 부근까지 뜯어내죠. 이후 갈빗살→내장→뱃살 등의 순서로 잘라내요. 초보들은 이런 과정에서 경험이 부족해 전문가보다 적은 양을 잘라내는 거죠. 예를 들어 16쪽 뜯어낼 것을 15쪽 정도밖에 못 얻어내죠. 전문가들은 고래만 보면 어떤 순서로 잘라야 확실할지가 머릿속에 그려져요."

하지만 이씨는 1986년 포획 금지가 된 이후 고생길을 걸었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버려 방황을 많이 했던 것.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는 배 타는 일 외엔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부산 상선도 타보고 싱가포르 등을 전전하며 배를 탔다. 싱가포르에서 일할 때는 살인 더위로 인해 거의 죽다 살아났다.

그렇게 긴 방황 끝에 고향인 장생포로 와서 다시 시작한 해체 작업.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한 번씩 상인들로부터 고래 해체 작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보통 한번 작업하면 30만~50만원 정도 수고비를 받는다. 수천만원대의 고래(밍크고래) 한 마리 가격에 비해 무척 짜다. 그런데다 해체 작업 요청도 자주 없어 생활이 어려운 편. 이씨는 지난해 말 울산수협에서 해체 작업을 했던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라고 했다.

"과거 고래잡이가 허용됐을 당시엔 하루 최대 8마리까지 해체 작업을 해봤어요. 보통 한 마리 해체하는데 3, 4명이 달려들어 2시간 30분~3시간 정도 걸리죠. 8마리 해체할 때는 거의 잠을 못 잘 정도로 하루종일 매달려야 했어요. 그래도 고래의 맛있는 부위를 실컷 먹을 수 있었죠. 그때가 그립네요."

◆생선회 육질에 쇠고기 맛… 수육·육회 등 요리법 다양

고래고기는 자고로 12가지 맛이 난다고 전해진다. 꼬리와 날개 맛이 다르고 날것과 삶거나 숙성시킨 것의 맛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고래는 모두 식용이 가능하지만 고래고기 전문점에서는 대부분 밍크고래를 사용한다. 밍크고래가 고래 특유의 누린내가 덜하고 영양도 더 좋기 때문이다.

고래고기의 독특한 향 때문에 처음에는 꺼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고래는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육질이 생선회처럼 부드러우면서 포유류라는 속성으로 맛이 쇠고기와 비슷하다. 쇠고기의 맛과 참치 같은 고급 생선의 맛을 섞어놓았다고 보면 된다.

고래는 뼈와 이빨을 제외하고 모든 부위가 요리로 가능하다. 하지만 대표 요리를 보면 육회와 수육'생고기'우네'오배기'모둠'고래찌개 등으로 나뉜다.

육회는 쇠고기 육회와 조리법이 거의 같다. 배와 갖은 양념 등으로 버무린 형태로 쇠고기보다 육질이 좀 더 부드럽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쇠고기 육회와 맛이 비슷해 고래고기를 처음 먹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메뉴다. 수육은 껍질과 내장 부위, 갈빗살 등을 삶은 것으로 흔히 즐겨먹는 돼지고기 수육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맛이 독특해 처음 먹는 사람에겐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생고기는 소 살코기처럼 저온에서 3, 4시간 이상 숙성한 것으로 쇠고기 생고기와 맛이 비슷하다.

고래고기에 있어 좀 특이한 것이 우네와 오배기다. 가슴살과 배폭살 등을 일본말로 '우네'(畝)라 하는데 주름이 밭고랑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울산 장생포 고래할매집 나미자(53'여) 사장은 "우네의 경우는 돼지고기로 치면 삼겹살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고 소개했다. 꼬리를 소금에 오래 절인 뒤 뜨거운 물에 데쳐 얇게 저며 먹는 '오배기'(大羽)도 별미 중 별미다. 나 사장은 "꼬들꼬들하면서 아무 맛이 안 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당긴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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