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라보면 사람이 만물보다 고귀한 존재지만, 만물이 바라보면 만물이 사람보다 고귀한 존재다. 그러나 하늘이 바라보면 사람과 만물은 평등한 존재다.'
조선 후기에, 조선 후기를 뛰어넘어 살았던 걸출한 학자 홍대용 선생의 '말씀'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람이므로 일단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땅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과 똑같이 취급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땅강아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땅강아지가 사람보다도 고귀한 존재이고, 하늘이 바라보면 사람과 땅강아지는 아무런 조건 없이 평등한 존재다. 만약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자각이 투철하지 않으면, 땅강아지의 미래뿐만 아니라 사람의 미래도 대단히 불행하게 전개될 터이다. 그 불행한 미래가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현실의 도처에서 이미 빠른 속도로 펼쳐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갑작스런 逆風(역풍)으로 일어난 天災(천재)다.'
정월 대보름날 3만명의 구경꾼이 모인 가운데 화왕산 꼭대기의 수만평 억새밭을 불태우다가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언론들이 맨 처음 보도했던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천재가 아니라 무사안일의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人災(인재)다.'
이튿날부터 각종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 놓았던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정말 언론들의 보도처럼 참사의 원인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화왕산 참사의 진짜 원인은 우리가 함부로 '미물'이라 부르는 생명들도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존재이고, 하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람과 다름없는 존재임을 완전히 망각해버린 데 있다.
만약 억새밭의 땅강아지도 살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살 권리가 있는 생명체임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단순히 불구경을 하기 위하여 실로 무수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 그 엄청난 억새밭에다 차마 불을 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생명들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언론들도 사람의 죽음에만 야단을 떨었지, 땅강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여름방학 때마다 숙제로 제출한 곤충 채집은 아무래도 크게 잘못된 숙제가 아닐까 싶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길러주겠다는 그 취지 자체를 모르는 바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철모르는 어린이들에게 관찰력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생명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사려 깊게 배우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직 채 배우기도 전에, 생명을 죽이는 것을 숙제라는 이름으로 강요받았고, 급기야 그것을 취미와 오락으로 삼아버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숙제와는 무관하게 개구리의 꽁무니에 보릿짚을 꽂아 배 속에다 바람을 불어넣었고, 잠자리의 꽁무니를 떼어낸 뒤에 보릿짚을 꽂고 날리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생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놀이는 이제 바야흐로 그때의 아이였던 어른들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가령 여름철 각종 축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종류도 다채로운 잡기 체험 행사들, 그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결국 남의 생명을 죽이는 것 자체를 취미와 오락으로 생각하는 아주 유쾌한 여가 활동이다. 먹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으므로, 다른 생명들을 죽이지 않을 수가 없기는 하지만, 하늘이 바라보면 사람과 똑같이 고귀한 생명들을 취미와 오락으로 죽여도 좋을까.
사람의 존엄성을 높이자고 외치지만, 다른 생명들을 죽이는 것을 유쾌한 취미로 삼으면서 유독 사람만 존엄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사람의 존엄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 전체를 모두 존엄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모든 생명들을 다 같이 사랑하려 노력할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존엄성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다.
이종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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