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청초 우거진 골에 / 임제

청초 우거진 골에

임 제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느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금쯤 한반도의 그 어느 곳에서나 풀들이 우거지고 있을 것이다. 우거진 풀들의 싱싱함, 그것은 우리의 감각기관 그 어느 곳을 통해서라도 기쁨을 준다. 풋풋하게, 향기롭게, 또한 아름답게,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에게서 소리가 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청아(淸雅)하게 들리겠는가.

이 시조는 임제(林悌·1549~1587)의 작품이다. 조선 선조 때 사람으로 호는 백호(白湖), 성격이 강직하고 재주가 뛰어난 문장가로, 한문소설인 화사(花史)·수성지(愁城誌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등을 남겼다. 벼슬은 조선시대 18품계 가운데 열 번째 등급인 종5품(從五品)의 예조정랑(禮曹正朗)과 도사(都事) 정도를 지냈을 뿐이고, 그보다는 전국을 유람하며 시와 술로 세상의 울분을 달랬다고 알려진다.

그가 평안 도사로 부임할 때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푸른 풀 우거진 골짜기에 자는가, 누웠는가/ 젊고 아리따운 얼굴은 어디다 두고 이렇게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사람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하노라'고 읊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게 한다.

임제는 이 시조를 읊고 관직을 삭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 나라의 관리가 일개 기생의 무덤 앞에서 한탄을 했다 하여 조정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관리는 누구를 그리워할 수도 없는가. 그것도 죽은 사람을…. 그야말로 그것을 '슬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을 보면 임제가 생전의 황진이를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만났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황진이의 생몰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지만, 추정해 보면 황진이가 중종·명종의 재위 기간을 살았다면 1506~1567년 사이고, 임제는 1549년에서 1587년까지 살았다.

따라서 같은 시기를 산 것이 임제 생후 18년이다. 그 나이에 임제가 기생집을 드나들었을까. 아닐 것이다. 생전에 만나진 못해도 문학적으로 흠모했다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더 멋있다. 임제, 그 호방(豪放)한 조선 문인의 멋이 우거지는 산과 들의 풀잎처럼 싱그럽다.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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