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년가량 앞두고 있다. 내년 6월 2일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앞서 벌써부터 자천타천 하마평이 무성하다.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물론 모든 선거전의 핵심은 바로 자금력.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선거마다 천양지차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4·29 재보선 후보자 선거비용 수입·지출 내역에 따르면 광역의원의 경우 4천만원 안팎, 기초단체장인 시흥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3명의 선거지출액 평균은 1억7천여만원이었다.
국회의원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 울산, 전주, 경주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후보자 1명이 평균 1억2천여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도 1억2천400여만원을 지출했다.
이 같은 지출은 후원금보다 개인이 부담한 자금이 대부분이다. 경주에서 당선된 정수성 의원의 경우 1억9천866만3천20원을 지출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후원금은 4천200여만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후보자 자산에서 나온 것. 신고된 것만으로 봤을 때도 적어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인이 내놓아야할 돈은 1억5천만원 정도.
이처럼 거액이 한번에 들어가는 축제가 선거이기에 후보들은 자금 동원에 사활을 건다. 자금력 확보의 첫길은 자비를 터는 것. 두번째가 후원금 모금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을 제외한 대다수 정치인들에게 후원금 모금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영향력 여부를 떠나 책을 찍어내고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조직력을 결집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거 종자돈을 보태기도 하기 때문.
앞으로 1년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출판기념회 쓰나미가 닥칠 것으로 보인다. 돈없던 문인들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주위에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출판기념회. 정치인에게도 정치자금을 위한 합법적 창구가 돼버린 이 출판기념회란 어떤 것일까.
◆도대체 출판기념회가 뭡니까
2007년 3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한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린 이명박 현 대통령 출판기념회에는 기록적인 인파가 몰렸다. '온몸으로 부딪쳐라',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은 약속', '어머니' 등 3권의 책을 내는 출판기념회에 무려 2만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던 것. 이날 국회의원만 63명이 참석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 127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 현장에서는 무더기로 책을 사는 이들이 상당수 목격됐다. 공식적인 집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5만권 정도가 팔렸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3권의 책은 각 1만2천원이었고, 총수입은 최소 6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4·29 재보선 직전 경주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나섰던 정수성 후보는 출판기념회 한 번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박근혜 의원의 등장 때문이었다. 박의원이 정수성 당시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뿐 지원 유세를 전혀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정치'를 했지만, '박심은 내편'이라고 주장하는 정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정종복 후보를 이겼던 것.
출판기념회에 대한 정의는 단순하다. 국어사전은 '저작물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에 그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푸는 모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읽어보면 별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는 책을 그 자리에서 사는 사람들이 적잖다. 지지자나 눈도장을 찍을 사람들은 한꺼번에 50권, 많게는 그 이상을 사기도 한다. 정가에 맞게 책을 사는 것이기에 공직선거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선대본부 출정식을 방불케 한다. 출간을 기념하는 것보다 정치인들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특히 중진급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다 고고하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장이 출판기념회. 게다가 정치자금까지 모금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의 출판기념회가 이어지고 있는 것.
◆정치인들이 쓴 책 중 베스트셀러라 할 만한 게 있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집계한 이주의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故(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5월 마지막주부터 현재까지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고인이 쓴 '여보, 나 좀 도와줘'는 출간 당시 많이 팔린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거 이후 가파른 판매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서적의 경우 관객수가 중심인 영화와 달리 순위로 매겨진다. 700만부가 팔렸다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처럼 특별히 많이 팔린 책이 아닌 다음에야 몇 부가 팔렸다고 밝히지 않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다만 시중에 나온 책들은 짧은 기간 안에 3천권 이상이 팔리면 베스트셀러, 장기간이라도 1만권 이상 팔리면 스테디셀러로 본다.
실제 손익분기점도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1천~3천권에서 형성된다. 소설가 출신의 김홍신('인간시장' 등), 김한길('여자의 남자' 등) 전 의원과 방송기자 출신 전여옥('일본은 없다' 등) 의원 등을 제외하면 자신이 쓴 책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들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이들이 펴낸 책의 내용과 제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살아온 날들을 풀어쓴 자서전적 내용. 특히 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봇물터지듯 쏟아지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길과 신념을 내비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뇌하는 자는 외롭지 않다'(서중현 현 서구청장), '몸을 낮추면 하늘에 닿지 않는 것이 없다'(이병석 국회의원), '열정의 뿔로 위기를 뚫어라'(유진선 전 경북도교육감 후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도 적잖다.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책을 펴낸 박근혜 의원은 2000년 '나의 어머니 육영수'라는 책을 펴냈고, 윤순영 중구청장은 분도예술기획 대표이던 2001년, 당시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 의원의 부인인 한인옥 여사 등과 함께 '내 어머니'라는 책을 펴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공직선거법 저촉 여부
앞선 사례에서 나왔듯 2007년 3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출판기념회는 다소 무리한 인원동원, 선거법상 지지발언 및 연호·구호가 금지돼 있음에도 현장은 그렇지 않아 선거법 위반 논란을 낳았었다.
특히 대구의 한 초등학교 동창회와 달서구 등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 결국 이들 중 일부는 기부받은 금액의 50배(1인당 120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27명이 교통편의 및 음식물 등을 제공받았다는 이유 때문.
당시 출판기념회 사회를 맡았던 유인촌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선거법 위반과 관련된 주의 환기성 발언을 하면서도 행사장을 찾은 선관위 관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너그럽게 봐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출판기념회는 이처럼 외줄타기의 형태를 띤다. 자칫하다가는 수사대상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 광주 경찰은 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아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의원이 올 3월 가진 출판기념회에서 자서전 형식의 책 20여권을 무료로 배포한 혐의 때문이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가로 책을 팔지 않고 무상으로 나눠줄 경우 문제가 된다.
대구경북에서도 '농지와 노인뿐인 농촌'이라는 자서전 내용의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진 김복규 의성군수가 가장 최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하지만 지난달 18일 출판기념회를 가진 김 군수의 경우 출판사에서 행사를 주최해 지역주민과 출향인, 저자인 김복규 군수 등 2천여명을 초청했다. 지난 2년 동안 공직을 수행하면서 보고 느낀 지역의 문제점과 미래 비전들을 담은 책이지만 자신이 주최하진 않았다. 공직선거법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도 있는 출판기념회지만 그렇다고 출판기념회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될 행사는 아니다.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출판기념회에서는 사전선거운동 혐의가 있을 수 있기에 예의주시한다"며 "선전활동이나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이 나오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는데, 후보로 나설 마음이 있는 이들은 대체로 잘 알고 미리 물어오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90일 이전까지는 출판기념회를 언제든 열 수 있게 돼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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