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헐렁한 자루 같다
세상 어딘가에 한쪽 끝이 묶여 있다
가로수가 촘촘히 늘어선 길 옆 초가집은
저녁밥 짓는 실연기를 피워 올리고
하늘은 공손하게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길 속에 놓여 있고
새들은 날기를 그만 두었다
일렬로 늘어 선 가로수가
아이 뒤를 줄레줄레 따라 가고 있다
주둥이가 묶인 자루 속에는
먼저 간 새와 뒤에 올 아이들이
천진하게 얼굴을 맞대고 있다
박진형의 길은 화가 박수근의 길이다. 또는 우리가 한 번쯤 걸어갔던 길이다. 박수근의 길일 때 그 길은 박수근의 마티에르가 그렇듯 몇 겹 중첩된 길이거나 길 속의 길이다. 박수근의 길일 때 맨 아래쪽 두터운 길은 잊어버리고픈,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길이다. 상처란 결국 점묘처럼 희끗희끗해지는 법이다. 가장 위쪽의 길은 잊혀지지 않는 길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박수근이 그린 어떤 그림처럼 자꾸 덧칠해서 희망과 절망을 중첩시키는 방법이다. 그가 그 길은 우리가 한 번 걸어갔던 길이라고 독백처럼 말할 때 길은 마침내 헐렁한 자루를 가졌다. 어떻게 해서 길이 자루로 바뀌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인이 길 위에서 세상의 그림자들이 겹쳐진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로수와 새와 아이들의 표정을 가져오기 위해 그것들을 자루로 묶었다. 그래서 자루의 길이 탄생했다. 오래전 현대시학에 이 뛰어난 시가 발표되었을 때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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