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창 일할 20, 30대 왜 거리에서 떠도나

이영호(가명·29)씨는 요즘 대구시내 한 노숙자 쉼터에 머물고 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이씨의 방황은 군 제대 후부터 시작됐다. 실업계 고교를 나온 그는 안경공장, 섬유공장, 자동차 부품공장, 전선공장 등에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근무하는 회사마다 문을 닫았고,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었다. 경제적 보탬이 되던 형과도 연락이 끊겼다. 돈이 떨어지니 밀린 방세를 내지 못했고, 쪽방에서 고시원으로 다시 찜질방과 PC방을 전전했다. 이씨는 "막일이나 아르바이트로 돈이 조금 생기면 찜질방이나 PC방에서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시간을 보낸다"며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기찬(가명·31)씨는 1년째 찜질방과 만화방, PC방을 전전하고 있다. 일용직 노동을 하는 조부모와 함께 살던 그는 군에서 제대를 하면서 집을 나왔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지만 고졸 학력으로는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힘든 일도 마다 않고 했지만 최근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그마저도 잃고 말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나 건설현장 막노동을 해서 돈을 조금 만지면 만화방이나 찜질방에서 잠자리를 해결한다. 김씨는 "집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한 달 정도 하니까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더라"며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만 쉬었다.

불황의 그늘 아래 20, 30대 청년들이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데다 부모나 가족의 도움마저 끊기면서 정처없이 떠도는 청년 노숙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이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 정규직 취업시장에서는 고학력 미취업자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생산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에게 밀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 30대 청년 노숙인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가 조사한 '노숙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거리 노숙인 201명 가운데 57명(28.4%)이 20, 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25명, 2007년 52명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지역의 전체 노숙인 수도 최근 급증했다. 서울신학대 이봉재 교수가 조사한 '전국 노숙인 실태'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노숙인은 지난 2월 현재 392명으로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가 지난해 7월 조사한 324명에 비해 6개월 동안 68명이나 늘었다.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 관계자는 "빈곤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되기 때문에 통계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진 않는다"며 "하지만 극심한 청년 취업 한파로 인해 한계 계층으로 밀려난 청년층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20, 30대 청년층 노숙인 수가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년층의 경우 쉼터나 거리로 나서기 전에 찜질방이나 만화방, PC방 등을 옮겨다니며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으로 연명하기 때문에 잠복기가 훨씬 긴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새살림공동체 김대양 목사는 "청년 노숙인의 경우 거리로 나서더라도 쉼터를 잘 찾지 않고, 도움의 손길에 기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노숙이 길어지면 자활 의지조차 사라지고, 고된 일을 피하려는 습성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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