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 대주교는 "이 책을 내면서 시집 보낸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말없이 살아주기 바라고 어디서나 맑은 사랑을 전하기 바랄 뿐입니다"라고 했다. '말없이 살아주기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무엇이라고 풀어서 설명할 것인가.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은 모두 '낮은 톤'이다. 지은이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로 살아온 인생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성직자의 목소리이며 또한 할아버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살면서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과 사연에 대해, 오고 갔던 세월에 대해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듯하다.
이태수 시인은 "이문희 대주교님의 시는 그지없는 사랑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높고 깊은 정신적 순례와 맑고 그윽한 시적 시선은 낮고 부드럽게 사람들 가까이, 그 중에서도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와 언제나 가서 안기고 싶은 어머니를 향해 각별하게 열린다"고 말한다. 시집 '아득한 여로'에 묶인 시들은 한결같이 평화롭다.
118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상략)나는 한 쪽 어깨가 처졌다/ 따라서 한 쪽은 올라갔다고 하겠지만/ 실은 두 쪽 다 같이 올라가지 못하고/ 두 쪽 다 처지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어깨도 하나 바르지 못한/ 비뚤어진 사람이다/ 나는 어릴 때 배가 불룩 나온 어른을 보고/ 보기 흉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했었는데/ 지금 내 모양은/ 그때 그 어른과 같아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자꾸 무엇을 먹고/ 나온 배를 옷으로 가리고 있다. (중략)나도 분명 한 사람인데/ 이렇게도 갖추지 못한 것이 많다(하략)'
이문희 대주교의 시집 '아득한 여로'에 포함된 시 '자화상'의 일부다.
어린 아이는 어른의 세계를 모르고, 어른은 아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가 어른들 세계를 모르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어른은 자신이 분명히 지나온 세월임에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휙휙 변하는 세상을 좇아 달리느라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내 모습이 어떤지 살펴볼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이문희 대주교의 '자화상'은 한 인간의 삶을 꾸밈없이, 편견없이 바라보며 긍정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을 안 드시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 뒤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는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셨다/ 오늘 문득/ 아버지가 두 말 술을 거뜬히 드셨다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이제 내가 술을 보고도/ 마시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태어나서/ 아버지처럼 술을 마셨다/ 또 아버지처럼 이상하게 술 마실 생각 잊은 채/ 말문을 닫게 될 것인가 보다'
아버지의 술과 나의 술을 매개로 삶을 바라보는 시 '아버지 2'는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긍정을 담고 있다. 술 많이 드시던 아버지는 건장하신 분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 건장하셨던 분이 어느 날부터 술을 멀리하셨다. 그 아버지의 자식인 나 역시 말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그랬듯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된 나는 더 이상 술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신 길을 나 역시 따를 것임을 알고 있고 이를 긍정한다.
여기서 아버지의 '술'을 말 그대로 술로 이해해도 좋고, 욕심으로 혹은 즐기던 무엇, 마음에 늘 두었던 무엇으로 이해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은이는 좋아하던 것, 무시로 찾던 것, 늘 곁에 두었던 것, 그리워하던 것을 잊어가는 삶, 그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분명히 아쉬운 작별임에도 지은이는 너그러운 미소로 송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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