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태공화국' 한국, 이젠 10대까지

여고생이라며 산부인과 문의해보니…

최근 아내의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던 정모(37·대구 달서구 대곡동)씨는 대기실에 앉아있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인공임신중절을 위해 병원을 찾은 학생과 친구들은 대기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를 떨었다. 한참후 중절수술을 마치고 나온 여학생들 태도는 더욱 놀라웠다. "이제 후련하다"며 활짝 웃으며 친구들과 하이파이브까지 하고는 병원문을 열고 사라졌다. 정씨는 "의사에게 '여고생들인데, 낙태를 마음대로 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낳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답하더라"며 허탈해했다.

성(性) 문화 개방에다 생명경시 풍조가 겹쳐지면서 인공임신중절(낙태)이 공공연히 시술되고 있다. 한국은 OECD 30개 국가 중 낙태 수술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다.

정부는 최근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라도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범국민 운동까지 제안하고 나섰지만, 감기 주사 맞기보다 더 쉽게 낙태 시술이 횡행하고 있다.

◆부모 필요없다?=기자는 지난 12일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가장해 전화로 대구시내 10곳의 산부인과의원에 낙태수술을 문의했다. 대부분 병원은 "부모님 모르게 해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학생이 모아놓은 돈에 맞춰 가격을 조정해 줄 수 있다. 꼭 우리 병원으로 오라"고 친절하게 당부하는 병원 있었다. "기말고사가 코앞이니 일단 시험에 집중하고 시험이 끝난 후 꼭 병원에 찾아오라"고 충고하는 곳도 있었다. 낙태 자체도 위법인 상황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낙태까지도 아무렇게나 이뤄지고 있었다.

부모 동의가 꼭 필요하다고 대답한 곳은 달서구 용산동의 산부인과의원 단 한 곳뿐이었다. 이병원은 "나이가 너무 어려 몸에 해가 될 수도 있으니 부모님과의 상의가 꼭 필요하다"며 "혼나는 것은 잠시뿐이니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오라"고 설득했다.

인공임신중절이 위험할 수도 있는 6개월 이상의 임신부에게까지 아무렇지 않게 낙태 시술을 하는 곳도 있었다. 기자가 "임신 25주"라고 하자 "조금 위험하지만 충분히 상담 후 진행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는 병원도 있었다. 비용은 300만원 가량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낙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5년 용역을 통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연간 34만2천233건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해 태어난 신생아(43만8062명)의 78%에 달할 정도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음성적 낙태 건수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150만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미혼 여성 42%가 낙태 경험이 있다는 집계도 있을 만큼 심각한 저출산 국가인 대한민국은 낙태 천국인 셈이다.

◆문제는 사회분위기=이처럼 낙태가 만연하면서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3일 기존 법규보다 낙태가능 범위를 좀 더 엄격하게 강화한 '모자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존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우생학적·유전학적 사유와 전염성 질환, 강간, 혈족 또는 친·인척 간의 임신' 등 규정이 모호해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는 인상을 준다는 판단에 따라 '우생학적·유전적 질환 가운데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낙태를 허용하는 질환에서 제외하고 인공임신중절 허용 임신기간을 28주에서 24주로 줄이는 등'으로 내용을 수정했다.

낙태반대운동연합 임종희 사회복지사는 "사회 분위기가 낙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다 낙태로 처벌받는 의사나 산모는 거의 없는 것도 문제"라며 "심지어 7, 8개월 이상의 태아를 유도분만시켜 사실상 살해하는 범죄까지 자행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임 복지사는 또 "낙태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치않는 임신 상황을 막을 수 있도록 청소년기에 피임법과 올바른 성 지식을 교육하고, 생명존중의식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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