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37·여)씨는 지난해 여름 체외수정 시술 8번 만에 아이를 얻었다. 불임 진단을 받은 지 3년 만이다. 3, 4개월에 한 번씩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박씨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주위 친구들과 동서들의 임신 소식에 혼자 눈물을 흘렸던 날도 부지기수다. 이제는 그토록 기다렸던 예쁜 딸을 낳아 기르고 있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한번에 250만~300만원씩 드는 체외수정 시술비와 약값 등 금전적 부담 때문이다. 그는 대출까지 받아 3천만원가량을 썼다. 박씨는 "아직도 대출이 1천만원가량 남아 있다"며 "아이를 가지는 데 워낙 많은 비용을 투자한 탓에 결혼 7년차지만 빚만 잔뜩 쌓여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잘 키울 준비 돼 있는데…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기 힘든 '불임'(不妊)·'난임'(難妊)부부들이 늘고 있다. 1.19명이라는 세계 최저치의 출산율 이면에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부부들의 문제가 깔려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 30대 기혼 여성의 불임비율이 13.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젊은 부부 7쌍 중 1쌍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임부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인색하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지만 실제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30% 이하'라는 조건에 얽매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원을 받더라도 시술비용의 절반(최대 150만원) 수준에 머물러 불임부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3회 270만원까지 지원되지만 기초수급자에게는 몇십만원의 비용도 부담스런 경우가 많다. 불임부부들은 "난임부부를 지원하는 것이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정부의 지원은 다른 곳으로만 쏠리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불임 진단검사와 배란촉진 시술까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인공수정부터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경제적 부담으로 불임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부부도 상당수다. 김모(34·여)씨는 체외수정 시술을 위해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한 달에 10번 이상 병원을 들락거리다 보니 직장상사와 동료의 눈총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 김씨는 "사직한 덕분에 정부 지원기준에 해당돼 150만원의 시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수입이 줄어 100만원 넘는 나머지 비용을 부담하는 것조차 빠듯했다"며 "3번의 시술로도 실패하고 나니 이젠 비용 부담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불임 관련 치료를 받은 환자는 19만명으로 2004년에 비해 28% 늘었다. 이 중 상대적으로 임신이 수월하다는 20, 30대 젊은층이 89%에 달했다. 산부인과 이성구 원장은 "불임부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생활 속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비싼 비용이 문제지 난임부부의 상당수는 시험관 시술 등을 통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대구시의 불임부부 체외수정 시술비 지원현황에 따르면 지원을 받은 부부들은 평균 1.15회 시술을 받았으며 2007, 2008년 2년 동안 1천177명이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51명(48%)이 임신에 성공해 757명(쌍둥이 포함)의 자녀를 낳았다. 산부인과 이정형 원장은 "불임 시술은 비용도 비싸지만 잦은 병원 왕래로 직장을 유지하기 힘든 여성들도 많다"며 "육아휴직 제도처럼 범정부적 차원에서 불임 여성들이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불임과 난임=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는데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불임(不妊)'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임신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렵다는 뜻으로 '난임'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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