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 고민하는 글쟁이' 이어령 前 장관

"평생 글쟁이가 글 때문에 고민이라고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골프가 잘 안 되고, 테니스 황제 페더러가 테니스가 안 돼 골머리를 앓는 것과 비견될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경지에 오르다 보면 주변 기대 때문에 큰 경기에서 부담이 더 커지고 생각대로 실력발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역시 좋은 글에 대한 부담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한 듯했다.

현재 언론에 '한국인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이 전 장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필적하고픈 '한국인 이야기'를 현재 써내려가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대한민국 속에 깃든 문화의 혼과 잠재된 능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한편 한편의 글들은 결코 쉽지 않다. 보자기, 짚신, 고무신 등 어린 시절 한국인만이 겪었던 소중한 기억들을 하나의 새로운 문화코드이자, 한국인의 내재된 특성까지 알려줄 수 있도록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하지만 짧은 글에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모든 것을 담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전 장관은 "바둑, 장기를 두는데 차(車)·포(包) 다 떼고 뛰게 하는 것 같다"며 "원고지 10장 안에 테마 1개를 압축해서 집어넣어 설명하기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그가 이런 고민 때문에 TV 예능오락프로 무릎팍도사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그의 삶이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 이렇듯 골머리 아파하는 이 전 장관을 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만났다. 무릎팍도사를 대신해 그의 고민을 들어봤다. 물론 들어만 줬을 뿐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한국인 이야기'는 레토릭

이 전 장관을 고민에 빠지게 한 '한국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그때 그 장면을 그대로 쓴 게 아니라 이미지로의 변형된 느낌을 상상력과 문체의 힘으로 재현한 레토릭(rhetoric·수사학)이라고 했다. 레토릭이란 진실을 담지 않거나 진지함을 결여한 채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며낸 말이나 글이란 뜻의 부정적인 뜻인데, 그의 '한국인 이야기'에서는 진실을 뛰어넘는 내재된 한국인의 힘을 보여주려 했다.

특히 그는 1933, 1934년생이 겪어온 독특한 세대의 경험에 근거한 글들을 유년시절의 체험인 '한국인이야기' 시즌 1에 담아내고 싶어했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책이 나온다. 책에는 앞뒤에 충분한 설명을 곁들였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한국인 이야기를 시즌 4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시즌 2는 3개월쯤 휴식기간을 가진 뒤 10월쯤 연재를 시작할 예정이고, 또 다음해에 시즌 3, 4를 완성한다는 잠정적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 때문에라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는 글쓰기를 좁은 평균대 위의 체조에 비유했다.

"마루운동이라면 수백 장의 원고지에 자유롭게 쓰겠지만, 평균대는 원고지 10장으로 줄여야 하는 제약이 따릅니다. 자세히 소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난처함을 매일 겪어요. 꼭 필요한 주석이나 인용문에 대한 출전도 신문을 통해서는 일일이 밝힐 수가 없는 것도 독자들이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는 '한국인 이야기'에 대해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쓴 것이지만, 한국인 이야기는 역사책이나 신문기사에도 오르지 못한 다양한 글이 포함돼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한국인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서 우리 후손들이 이를 연주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이야기'는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숨 쉬고 외치고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생명의 역사'라는 것이 그가 하고픈 메시지이다.

◆'창조'는 평생 화두

이 전 장관은 끊임없이 창조하고 싶어한다.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100살이 돼도 창조력이 샘솟는다면 청춘인 것이다. 그의 꿈 역시 '대한민국 창조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이 학교는 '창조적 마인드(Mind), 생각(Thinking), 상상력(Imagination)'이 교시이다. 남의 뒤통수를 보고 그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학교의 목표이다.

그는 우리사회는 산업화-정보화사회를 거쳐 창조사회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령·성별·계층·지역의 벽을 뛰어넘어 스스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가는 국민이라면 미래는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 게이츠도 창조적 자본주의를 얘기했습니다. 모방하는 사회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 장관은 이미 경기도에 창조학교(Creative School)를 준비하고 있다. 예산확보 준비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개혁·창조라는 가치를 새롭게 심어주는 학교 구상은 이미 끝냈다. 그곳에선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주축으로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려 새로운 창조에너지를 생산해낼 터. 그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이는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와이 낫'(Why not?)도 그의 키워드. '왜 안되지?'라고 항상 묻고 따지는 인간이 바로 멀티미디어 세계의 창조인간이자, 시공간을 뛰어넘는 빛나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간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난 군중 속 왕따

그는 "외롭다"고 했다.

기자가 "왜 외롭냐"고 하자, "물리적 고독(Isolation)이 아닌 군중 속 고독(Solitude)"이라고 답했다.

"저같이 바쁜 사람이 외롭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강의, 세미나, 토론 등 저를 찾는 곳은 숱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쓰는 글의 깊은 곳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독자나 지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그만큼 외로운 투쟁이지요."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보드레르의 '남과 얘기한 후 끊임없이 야위어져 간다. 100% 소통이란 없다'는 말도 인용했다. 일본에 대한 얘기도 우리가 너무 모르는 얘기가 많지만, 감히 더 들춰내 얘기하지 못하는 현실도 얘기했다.

그는 "때가 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다 풀어내 독자들에게 알릴 것은 용기를 내 정확히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에 대해 "여섯 살 때쯤 햇빛이 쏟아지는 보리밭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고 가다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며 "나중에 그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경험한 것인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니까, 또 아무것도 빛나는 것이 없으니까 친구를 만들고 연애를 하고 조직에 들어가 충성하고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고 덧붙였다.

◆껍질 아닌 진실 보여줄 터

이 전 장관은 "세상에는 자신의 껍질만 보고 진실과 내면은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 예로 자신이 가진 컴퓨터 7대 때문에 'IT의 대가, 도사'라고 명명하지만, 이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286·386·486·586 컴퓨터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그때 플로피디스크 등이 그 컴퓨터로만 구동이 되기 때문에 갖고 있는 것이지, 실제 컴퓨터 도사 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가진 컴퓨터 7대만 보지, 어떤 용도에서 왜 아직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 질문은 피해갔다. 분명 하고픈 말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에 대해'와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마디'를 해달라 하자 이내 제지한 뒤, "심도 있는 얘기를 정식으로 준비해 언론을 통해 한번 말하겠다"고 말했다. "진실을 파고드는 쓴소리를 꼭 하겠다"고 했다.

"참치는 헤엄을 치는 것이 숨을 쉬는 것이라고 합니다. 잠잘 때에도 헤엄을 치다가 죽는 불쌍한 물고기지요. 저 역시 글쟁이로서 그렇게 운명지어진 존재이죠. 창조적 사고의 바닥엔 비판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끝없는 부정과 긍정을 되풀이합니다. 제 인생의 빈 칸은 제가 채워갑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이어령은?=1934년 충남 아산 출생. 부여고, 서울대 국문과 학사·석사, 단국대 국문학 박사.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 논설위원 역임.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문화부 장관 역임. 올림픽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 중앙일보 고문. 제4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문학 부문), 2001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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