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아스테릭스:미션 올림픽게임'을 택한 이유는 순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다. 1980년대 초반 즐겨보던 어린이 잡지의 별책부록으로 찾아온 만화 '아스테릭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만화 전체가 컬러였을 뿐 아니라 마법 물약을 마시면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갖게 되는 설정, 착하고 순박한 골(Gaul)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로마군을 혼내주는 주인공들의 모험까지. 게다가 탄탄한 스토리와 섬세한 묘사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년가량 세월이 지나 1999년 '아스테릭스'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2년 '아스테릭스:미션 클레오파트라'에 이어 2008년 '아스테릭스:미션 올림픽게임'이 등장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아스테릭스'의 초능력이 과연 국내 팬들에게도 통할까?
◆올림픽에 나간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영화 첫 부분에 나오는 연도는 BC 50년.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던 시기다. 원작 만화와 영화에서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역을 정복하지만 '골' 마을만은 정복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아스테릭스와 그의 뚱보 친구 오벨릭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상에는 BC 58~50년 사이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역을 정복하고 완전히 복속시킨다. 만화와 영화는 시대적 배경만 빌려왔을 뿐 스토리는 순수한 상상이다.
영화는 프랑스어로 제작됐지만 영어 더빙판이 국내에서 한글 자막과 함께 상영된다. 이 때문에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영화에서 줄리우스 시저로 나온다. 편의상 시저로 부르자. 황태자인 브루투스는 시저의 양아들로 나온다. 틈만 나면 아버지를 독살해서 권좌에 오르는 것을 꿈꾸지만 늘 실패한다. 브루투스가 시저에게 바친 갖가지 음식을 미리 맛보다가 비명횡사한 황실내 독물 감정사만 47명. 시저가 브루투스의 시해 의도를 알면서도 가만히 두는 이유는 뭘까? 코믹 영화에서 별걸 다 걱정한다. 아무튼 시저는 아는지 모르는지 사고뭉치 브루투스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영화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수시로 처단해 버리는 것이 특기인 만년 2인자 브루투스가 그리스의 사랑스러운 공주 이리나와 결혼하려는 데서 시작한다. 그녀는 골 마을 사람이며 시인인 러브식스(이름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답답하지만)와 비둘기 펜팔을 통해 이미 사랑에 빠진 상태. 공주는 올림픽 게임의 우승자와 결혼하겠다고 브루투스와 러브식스에게 선언한다.
브루투스는 돈과 권력으로 심판을 매수하는 것도 모자라 몰래 제작한 마법 물약으로 무장한 올림픽 선수단을 내세운다. 반면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신체뿐인 러브식스. 그는 골 마을의 영웅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과연 막강 로마 올림픽 대표팀에 맞서는 골 마을 대표팀은 어떻게 우승과 함께 사랑을 쟁취하게 될까?
◆프랑스의 국민 만화와 스포츠 스타의 깜짝 출연
영국에 해리포터가 있고, 미국에 미키마우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바로 아스테릭스다. 1961년 첫 발간된 뒤 총 33권의 만화책이 10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전세계적으로 3억2천만부 이상이 판매된 책. 프랑스의 작가 르네 고시니가 글을 쓰고, 알베르 우데르조가 그림을 그렸으며, 고시니가 1977년 세상을 떠난 이후 우데르조가 뒤를 이어 계속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영화 속의 골 마을은 바로 프랑스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최초의 인공위성에 '아스테릭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아스테릭스 테마파크'가 따로 있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시리즈 만화다. 1999년 처음 제작된 영화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에서만 관객 1천만명을 동원해 유럽 흥행 1위를 차지했고, 2002년 '아스테릭스:미션 클레오파트라'는 1천500만명을 동원했다.
시리즈 중 세번째인 '아스테릭스:미션 올림픽 게임'은 무려 1천30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투입했다. 스펙터클한 전차 경주 장면과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은 영화의 주요한 볼거리 중 하나. 게다가 은퇴를 선언했던 알랭 드롱의 컴백과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깜짝 카메오 출연까지 이어지며 영화는 초호화 출연진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게 됐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였던 알랭 드롱. 1998년 은퇴했던 알랭 드롱은 잘난 맛에 세상을 사는 이른바 '자뻑 시저' 역할을 멋지게 해냈다. 게다가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이 이집트 복장에다 가발까지 쓰고 드리블링을 하는 장면에다 NBA 농구 선수인 토니 파커의 등장이라니. 마지막 전차 경주에서 마치 F1 그랑프리 머신을 연상시키는 멋진 붉은색 전차를 모는 기수는 바로 세계적 카레이서인 미하엘 슈마허였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빠르고 강한 남자 '막시무스' 역으로 원래 정해졌던 장 끌로드 반담의 출연이 무산된 뒤 급조된 스포츠 스타는 바로 K-1 세계 챔피언 제롬 르 밴너였다. 적어도 유럽인들은 이들 스포츠 스타가 영화 속에서 고대인들의 복장과 머리 모양을 하고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간극을 메우지 못한 안타까운 코미디
하지만 여기까지다. 원작 만화가 프랑스 국민만화로 추앙받고 영화도 유럽에서 크게 흥행했으며, 초호화 스포츠 스타의 출연에다 기막힌 컴퓨터 그래픽까지 볼거리는 다 갖췄다. 그러나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우선 프랑스어를 영어로 더빙한데다 그것을 한글 자막으로 만들다 보니 웃음 코드가 많이 탈색돼 버렸다. 프랑스어를 그대로 번역한다고 해서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네들이 갖고 있는 원작 만화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조롱하고 비웃는 특유의 유머감각이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다. 주인공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활약도 부족하다. 오히려 영화의 주인공은 비록 악역을 맡기는 했지만 브루투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거대한 돌덩이를 마치 인형처럼 업고 다니며 우직하게 아스테릭스를 도와주는 오벨릭스의 모습도 없고, 골 마을의 자존심을 책임진 남자 아스테릭스의 활약도 억지스럽다. 간간이 웃음 폭탄이 터지기는 하지만 불발탄으로 그칠 때가 많았다. 그나마 마지막에 등장하는 전차 경주 장면을 통해 다소 지루하던 중반부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테릭스:미션 올림픽게임'은 기말고사가 끝난 자녀들과 함께 보기에는 안성맞춤인 영화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과장법이 의외로 어린이들의 눈에는 폭소를 이끌어내는 장면들로 비쳐질 수 있을 테니….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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