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연이 밥 먹여 준다

산자수명한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림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진짜 풍경만 할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심결에 이런 표현을 한다. 자연을 비유하는 것은 이렇듯 인공적이다. 미안하지만 자연을 이기는 상상력은 없다. 그 어떤 비유도 모자란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산자수명한 풍경을 담은 그림을 보면 어찌 된 일인지 진짜 같다고 한다. 까마귀 고기를 구워 먹지 않고서야 한 입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풍경은 그림 같고, 그림은 진짜 같다니.

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나는 한국화를 하는 친구와 거문도를 다녀왔다. 여수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다도해의 수많은 섬 사이를 지났다. 물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을 보면서 그림 같다는 말을 연발했다. 아뿔싸. 나도 이 표현을 은연중에 쓰고 있었다. 즉각 반성, 금강산 만물상을 뚝 잘라서 바다에 던져놓으면 저런 풍경이 될까. 천지 물을 풀어놓으면 저런 바닷빛일까.

친구는 전국의 강과 산을 이 잡듯 뒤지며 그림 같은 곳을 찾아낸다. 금강산도 여러 차례 뒤지고 다녔다. 거문도를 따라 나선 것도 다 그 까닭이다. 여러 번 가본 나는 이미 감동을 시로 쓴 적이 있다. 거문도로 끌고 간 것도 그 감동을 좀 그려보라는 의도였다. 예상대로 그는 거문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번 화구를 꺼내들었다.

요즘 그는 몹시 바쁘다. 경부대운하 때부터 그런 증세가 나타나더니 4대 강 살리기로 가시화되면서 더 그렇다. 준설을 하고 보를 쌓고 자전거도로를 놓는다니 가히 짐작이 간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곳이 바로 그의 작업장이 아닌가. 결국 손을 댄다면 그의 작업장은 고스란히 사라지는 셈이 된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한국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직업을 잃지 않을까. 만약에 4대 강 살리기가 척척 진행이 되어 몇 년 내 풍경이 사라진다면 후대 사람들이 이들의 그림을 보고 뭐라 말할까. 그림 같다? 진짜 같다? 아니면, 우리나라에 설마 이런 풍경이 있었으려고. 아마도 상상화겠지. 그도 아니면 신선이 살던 곳이 아니었을까. 뭐, 이런 말들을 주고 받지나 않을까 상상해본다.

얼마 전 안동에서 열린 4대 강 살리기 설명회 석상에서 어떤 개발론자 교수가 환경론자들에게 자연이 밥 먹여 주냐고 일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4대 강 살리기가 자연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란 말인가. 이 지극한 형용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진짜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셈을 퉁기고 있다는 자백인가.

문학은 강을 역사의 상징이자 생명의 젖줄로 품고 있다. 강의 변형은 예술세계에서는 치명적이다. 예술의 삽으로 퍼 올린 수많은 작품들의 원형이 개발의 삽 앞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요즘이다. 자연으로 밥 먹는 사람들이여. 제발 무사하길.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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