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청와대의 正言官(정언관)

'소통 부족'을 공격받고 있는 MB정권의 청와대가 正言官(정언관)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왕조시대의 言官(언관)이나 臺諫(대간)과 같은 직책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 대통령의 친인척 등 모든 권력 주변 측근 실세들의 실책이나 비리를 비판, 탄핵하고 直言(직언)케 함으로써 민심과의 소통을 도모해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집권 초부터 人(인)의 장막에 가려 바깥 민심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바른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려 온 것을 감안하면 正言官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고민은 일면 긍정적 자세 변화로 보인다. 다만 슬림(slim)화하겠다던 청와대 조직을 더 늘려 가면서까지 새로운 직책을 만들겠다면 제대로 실효성을 살려야 한다.

우선 正言官 제도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그 첫째가 인재 선발의 투명성이다. 臺諫(대간) 제도가 꽃핀 고려 때만 해도 대간의 자리는 淸要職(청요직)으로 인정됐다. 따라서 임금의 마음에만 들면 뽑아 쓰는 '고소영' 내각식의 '코드 인사'는 절대적으로 배척됐다. 본인의 자질이나 경력은 물론이고 심지어 부모를 건너 증조모의 출신 성분에 문제가 있어도 대간직에 임용되지 못했을 정도다. 자질이 뛰어나더라도 王室(왕실)과 혼인 관계가 있는 인물은 물론, 임금의 외척들까지 言官 임명이 거부됐다. 어떤 권력자도 바른 소리로 비판, 탄핵해야 하는 言官의 직무 성격상 겹사돈까지도 대간직은 함께 못 맡게 한 임용규정은 칼날 같은 言官 제도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두 번째 조건은 言官들의 직언에 대한 면책 보장이다. 왕조 시대부터 臺諫들은 죄가 있어도 바로 체포할 수 없는 불체포 특권이 주어졌고 그들의 집무실에는 왕명을 받고 온 내시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상급 고관을 마주쳐도 고개 숙여 인사 안 해도 되는 특별한 대우를 했다. 언제 왕의 비위를 거슬러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위험 부담을 배려하는 취지의 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예외적인 예우는 그만큼 목숨 걸고 직언하라는 막중한 사명과 책무를 요구하는 것이었겠지만, 그런 제도적 신분 보장과 특별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연산군이나 태종 등 폭군 시대에는 왕의 미움을 얻어 귀양 가거나 투옥되고 파직된 경우가 수두룩했다.

세 번째 조건은 言官의 주된 표적인 대통령이 얼마나 잘 경청하고 따르느냐에 正言官 제도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왕조 시대 대부분의 통치자들 중엔 言官을 존중하고 신뢰해 준 聖君(성군)도 있었으나 성가신 존재로 기피하고 벌주거나 내쳤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한 三諫不聽則去(삼간불청즉거:세 번 간해도 (왕이) 듣지 않으면 즉시 직에서 물러난다)라는 중국 황실의 관행을 역이용해 고의적으로 귀를 막고 직언을 회피해 나간 경우도 잦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正言官이란 새 직책을 두어서라도 옳은 직언을 듣고 싶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언관의 직언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청와대 담장 바깥에 널려 있는 민중 속 言官들의 존재도 존중하겠다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언론과 건전한 네티즌, 말 없는 다수의 건강한 여론들이 그것이다. 그런 담 밖의 言官들과 집안의 正言官을 두루 똑같이 존중하고 두려워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애당초 正言官직은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 溫故知新(온고지신)의 뜻에서 직언에 관한 연산군 시대 상소문 한 구절을 보자.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는 임금의 마음속을 교묘히 알아, 날씨가 차고 더운 데 따라 소리가 달리 나는 생황이란 악기처럼 그때그때 말을 바꿔가며 임금 비위를 맞추니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직언하는 言官의 말은 듣는 임금에게 이로운 것이지 말하는 언관에게 이로운 게 아닌즉, 어두운 임금은 諫하는 말을 거절하고 어진 임금은 면전에서 대들며 비위를 거스르고 소매를 잡아당겨도 성내지 않고 경청해 받아들입니다….'

담장 안의 正言官을 거론하고 있는 청와대 측근들과 담 밖의 正言을 듣는 밝은 귀가 필요한 이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할 상소문이다.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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