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대구의 소프트파워

길거리에서, 시장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삭막했던 콘크리트 담벽에 예술이 입혀지고, 대형소매점에 눌려 사지로 내몰린 재래시장이 곳곳에서'예술과 문화의 코드'에 몸을 실으며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 남구 대명동 옛 계명대 캠퍼스 일대. 한때 중구 동성로와 함께 대구의 대표적인 유흥가였다. 특히 후문 일대 '양지로'는 1990년대 후반까지 대구지역 퇴폐의 온상이라고 할 만큼 유흥업소들이 난립하던 곳이었지만 대대적인 정비 후 몇 년 전부터 그 자리에 화가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예비 작가를 꿈꾸며 타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머무는 곳까지 합치면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화가가 머물 정도이며, 20여명의 전업 작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해 '대구의 몽마르트'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남구 대명동 남부시장. 10년 이상 비어있던 점포들이 하나둘씩 들어차고 있다. 남부시장과 남구청은 이달 초부터 빈 점포 무료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시작 20일도 되지 않아 45곳 가운데 40군데가 계약을 마치고 개점 준비에 들어갔다. 상인회 측은 점포를 무료로 내줘서라도 시장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상인회 측의 결단에 모 대학 미술학도들은 건물 외관을 알록달록한 예술작품으로 바꾸며 힘을 보탰다.

중구 방천시장에서는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재래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고, 생활 속의 미술을 심자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작가 스튜디오가 마련돼 '시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 시장 상인들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좋고, 작가에게는 새로운 작업 공간에다 다른 작품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시장에는 현재 작가'건축가 등 60여명이 빈 점포 19곳을 빌려 각 팀의 특성에 맞춰 이곳을 '작품'으로 바꿔놓고 있다.

앞선 사례들은 역발상과 기득권을 버림으로써 대구의 이미지를 바꾸며, 대구를 새롭게 하는 작은'소프트파워(Soft Power)' 임에 틀림없다. 물론 생존의 기로에 선 한계상황에서 탄생한 역설적 현상이긴 하지만 '절망에서 희망'을 보게하는 사건들이다.

이 같은 소프트파워는 마케팅이 필요없는 상품이다. 소문내지 않아도 찾아와 즐기고, 또 배워간다. 파리의 몽마르트, 뉴욕의 브로드웨이처럼 말이다. 가깝게는 대구에서 시작된 담장허물기 사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서 소프트파워의 위력은 잘 드러난다.

거창한 국책사업을 따오고, 국제대회를 통해 대구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것보다 길거리나 시장처럼 작은 곳에서부터 대구의 소프트파워를 개발하는 것이 어쩌면 더 빨리 대구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에 예측하지 못한 공간과 발상이 결합된다면, 반대로 평범한 공간에 허를 찌르는 콘텐츠를 결합시킨다면 대구가 전세계에 통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발상에서 대구를 변모시키는 소프트파워가 교육, 문화. R&D, 시민의식 등 각 부문으로 바이러스처럼 번질 때 대구가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도시, 외지인이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이춘수(경제부 차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