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게임 대화법'. 얼마 전 정형외과에서 한 모자의 대화를 들으며 필자가 붙인 명칭이다. 교복 차림의 남고생과 마흔 중반쯤 보이는 엄마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불만이 잔뜩 섞인 목소리. 경상도 말씨는 리듬감이 없어 무뚝뚝하게 들린다. 여기에다 부아가 치밀어 말끝을 수직으로 올리면 어떤 느낌으로 들릴까. 대화의 한 부분을 소개해 보련다.
엄마:공부 좀 해라. 미대는 공부 안 하고 가는 줄 알아.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는 하니?
아들:한다고. 하고 있다니까. 이번 주 용돈은 왜 아직 안 주는 거야. 약속을 지켜.
엄마:너는 약속을 지키니? 너 자꾸 농땡이 치면 아빠한테 여친 있다고 꼬바친다(말한다).
엄마의 말에 아들이 움찔하더니 이내 스매싱 자세로 돌아섰다. 엄마도 기선제압에 더 적극적이다. '핑퐁 게임 대화'는 간호사가 필자의 이름을 불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이들 가족은 소통이 안 되고 있다. 아들에게 엄마는 만만한 대상이고 아버지는 아직 두려운 존재다. 이성친구가 생겼다는 걸 아버지가 아는 날이면 아들은 대단한 제재를 받을 것 같다. 그것을 아는 엄마는 협박용으로 때로는 협상용 카드로 쓰는 모양이다. 두 모자의 '핑퐁 게임 대화법'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기만 한다. 말이 갈수록 거칠어지면서 감정이 격하게 되고 결국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는커녕 불신만 커지게 한다.
우리나라 토론 문화에서도 이 대화법이 보인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난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받아치기'식 말을 한다. 어른들의 모습에 동화돼서인지 아이들도 '핑퐁 게임 대화법'으로 토론에 참여한다. 탁구 경기에 출전한 선수처럼 상대방에게 거친 서브, 한 번에 끝내려는 공격적 스매싱 대화로 일관한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게임에서 패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말하는 법의 기초는 부모가 가르친다. 사소한 의견 충돌이 고성으로 이어지면 자녀들은 처음엔 두려워하지만 어느 순간 부모와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부모는 따끔하게 혼내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부모의 오래된 습관이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그 가정은 시간이 갈수록 핑퐁 게임 대화가 계속된다.
소통의 부재는 잘못된 말하기 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기식대로'가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기'식 대화를 시도한다면 지금의 분열된 우리 사회 모습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핑퐁 게임식 대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선수들이라 쉬이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 선수도 피곤하다. 경기 관람객은 손에 땀을 쥐고 흥분한다. 오래 끌다 보니 뒷소리도 무성하다. 가정에서는 이 게임보다는 '핑퐁 친선 운동'을 권하고 싶다. 실수는 격려의 말로, 멋진 스매싱에는 박수로, 운동이 끝난 다음엔 '덕분에 즐거웠다'는 말로 마무리하면 세상의 맛 중 이보다 더 맛깔스러운 게 어디 있으랴.
장남희(운암고 3년 임유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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