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구로사와 아키라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전폭적인 환영과 찬사만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쪽 같고 우직한 반항아였다. 사근사근하고 묵묵히 참을 줄 아는 일본식의 인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구로사와는 사실 주류 일본인들에게는 '골칫거리'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는 항상 일본과 일본인의 치부를 정확하게 겨냥했고, 많은 일본인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하고 소리쳐버렸던 것이다. 그의 작품 '라쇼몬'이 공개되자 많은 일본인들은 그 작품이 너무 난해하고, 두서가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결국 그는 스튜디오로부터 해고를 통지받기에 이른다.
거장 장 르누아르 또한 자신의 시대에서 고립무원의 코너에 몰린 적이 있다. 그의 영화 '게임의 규칙'은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혐오와 야유를 불러일으켰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시민들도 자신들의 치부를 직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거부감을 표한 것이다. 르누아르는 그 당시를 회고하며 그것을 '만장일치의 거부'라고 썼다. 구로사와 아키라에 비해서는 한결 여리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던 이 감독은 그래서 이 영화를 스스로 가위질하기에 이른다. 그런 감독의 소심한 타협안 또한 결국 기각되었다. 작품은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졌고, 르누아르는 그 충격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다.
세월이 지나 '라쇼몬'과 '게임의 규칙'은 전 세계인들에게 '만장일치'로 사랑받는 정전(正典)이 되어버렸다. 당대의 이해(利害)를 넘어서자 드디어 사람들은 그 거장들이 정밀하게 배치해두었던 진정한 컨텍스트를 읽어 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작품들이 비하한다고 생각되었던 '사무라이'나 '프랑스 상류사회'는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결코 특수한 계급이나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었고, 그랬기에 그 영화들은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것의 평가에 있어 사람들은 공정하다. 그래서 아무리 덮고, 밟고, 다져도 열정적인 사람들이 뿌려놓은 씨앗은 언젠가 콘크리트를 깨고 움틀 날이 온다.
'스캔들'은 도끼와 대적하는 사마귀처럼 중상에 대해 별 효과적인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누군가가 일어나 이 이 언론 깡패주의와 끝까지 싸워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스캔들'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으므로, 더욱 강력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감독의 길'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오세필 옮김/민음사/353쪽/7천500원
'게임의 규칙'은 전쟁 영화이지만, 전쟁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해한 표면 아래에서,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상의 문제들을 잊기 위한 희망으로 영화관에 가는 것인데, 도리어 나는 그들을 바로 그들의 근심 속으로 내던져 버린 것이다.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 지음/오세필 옮김/시공사/260쪽/1만3천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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