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본은 '칼의 역사'이고 한국은 '붓의 역사'라고 말한다. 칼의 주인공이 '사무라이'라면 붓의 주인공은 '양반'이라 할 수 있다. 사무라이와 양반은 양국 모두 지배계층이며 신분이 높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그 과정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태어날 때부터 그 신분이 명확하게 정해진다 즉, 다이묘(군주)나 장군 집에서 태어나면 다이묘나 장군이 되고, 무사 집에서 태어나면 사무라이, 평민이나 천민은 조상 대대로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양반은 전혀 다르다. 우리의 양반제도는 평민이면 누구나 다 양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시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누구든지 이에 합격만 하면 양반이 되고, 이러한 양반신분은 아들과 손자의 3대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약간은 민주적인 방식을 거쳐 신분상승의 기회가 주어지던 한국에 비해, 일본 사무라이는 그냥 가문에 따라 신분이 결정지어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가서 제일 부러워하고 기죽는 것은, 이 우동집은 5대째 80년이 되었다느니, 이 도자기는 14대째 400년이 되었다느니 하는 긴 전통에 대해서 들을 때다. 우리는 내가 하던 직업을 자식 손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극히 드문 일인데, 일본은 훌륭한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다니다가도 우동집의 전통을 이어받으려고 직장을 그만두고 낙향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며, 또 그런 일화가 미담으로 이따금씩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아, 그래서 일본이 이렇게 발전하나 보다. 그러니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지, 우동을 80년이나 만들다니! 참' 하면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반 존경반으로 마음마저 착찹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듬직성없는 전통과 얇은 문화에 개탄까지 한다.
부모가 해왔으니 싫어도 그냥 따라 해야 한다는 일본식 전통은 일본사회의 역사를 제대로 꿰뚫어보지 않고서는 그냥 한없이 장점으로만 보인다. 일본역사를 보면 근대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군주제로써, 다이묘 즉 군주들이 제각각 소왕국처럼 나라를 경영하고 있었다. 다이묘들은 독립 채산제였기 때문에, 만일 자기 번(藩)에서 소금 굽는 사람이 없으면 그 소금을 이웃 번에서 비싸게 사와야 하므로 자급자족을 위해서 대대로 그 직업을 계승토록 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만일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했으며, 도망이라도 친다면 천민으로 전락되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처럼 어느 정도 직업이동이 가능했던 사회가 아니었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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