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대한민국 첫 독도 기자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통화연결음악(컬러링) '홀로 아리랑'은 더없이 애잔하다. 노랫말 그대로 하염없이 해풍을 맞으며 일본의 침탈 야욕에 시달려야 하는 독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간밤에 정말 잘 잤는지, 손잡고 가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독도는 쉬어 가는 아리랑 고갯길이다. 아무나 언제든 가서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몇 해 전 풍랑을 무릅쓰고 찾아간 독도 역시 그랬다. 너울이 심해 삼봉호의 접안이 어려워 동도와 서도를 한바퀴 순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손길이 닿을 듯한 거리였지만 독도는 더 이상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주 독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독도 기자를 만나러 간 이번 독도행에는 파도가 낮아 연락선도 순항이었고 너울이 잦아들어 접안도 무난했다. 독도는 그렇게 속살을 송두리째 드러내며 나그네를 맞아들였고 하룻밤을 함께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했다.
국토의 최동단 독도에서의 밤은 정녕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망망대해에 두둥실 떠있는 一葉片舟(일엽편주)에 누워 있다는 孤寂感(고적감)과 함께 만경창파에 불끈 솟아오른 高臺廣室(고대광실)의 빈객이 되었다는 高絶感(고절감)이 공존하던 밤.
그날 따라 선착장 앞바다의 오징어채낚기 어선 불빛은 어찌 그리도 휘황하고, 새끼들을 보듬고 앉았다 망양정 위로 날아오르던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는 또 왜 그리 수선하던지….
輾轉反側(전전반측), 잠 이루지 못했던 독도에서의 첫날밤(또한 마지막 밤?). 연락선 뒤로 아득히 멀어져 가던 독도의 母(모)섬 울릉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10개월 전 포항에서 울릉도를 거쳐 홀로 독도로 향했던 기자의 심중은 어떠했을까.
노부모와 처자식의 만류를 뿌리치고 절해고도로 향하는 두려움과 막막함 그리고 기자가 상주함으로써 독도가 우리땅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나선 길이라는 자긍심이 교차했을 그 뱃길이 새삼 가슴에 울렁거렸다.
또한 밤늦도록 등댓불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고깃배 불빛 처연한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나눴던 이야기들이 오늘 다시금 귓전을 맴돈다. 시나브로 찾아오는 연구원과 촬영팀에게 방을 내주고 칼치잠으로 지새우던 숱한 밤, 부식을 넣어둔 냉장고가 고장나 며칠간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일, 깔따구(독도의 모기)에 시달리다 못해 긴 밤을 고스란히 바닷물 속에서 보낸 기억, 그리고 차마 형언하기 어려운 번민과 갈등의 시간들….
오로지 독도에서 기자의 존재이유를 웅변하기 위해 풍찬노숙이나 다름없는 더부살이를 해온 기자의 지난 사계절 삶의 얘기에 코끝이 아려온다. 일주일에 두 번씩 보내오는 '여기는 독도'란 글에 그 많은 고뇌와 아픔이 배어 있었을 줄이야….
발전기 돌아가는 굉음에 귀가 먹을 지경이었지만 "더러는 마음 편하게 다리를 펼 수 있는 허름한 발전기실이 차라리 호텔"이라는 기자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기자에게 독도는 이상이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섬 독도는 갈매기똥이 지천이고 천길 낭떠러지는 언제든지 생사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독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독도는 일회성 행사나 만세 소리가 아닌 오늘도 내일도 무사히 지내야 하는 일상인 것이다. 독도를 지키는 것 또한 들뜬 구호나 외침만이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차분한 하루하루일 것이다. 일본은 냉철한 일상으로 다케시마(竹島)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는 흥분과 열정으로 독도를 흔들고 있지는 않은지.
독도 기자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독도 상주기자 전충진! 오늘밤도 삼형제바위와 탕건봉 너머로 오징어잡이배 불빛이 아련한지? 너울이 일렁대는 선착장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무슨 상념에 잠겼는지? 긴 수염에 꺼칠한 얼굴을 하고 오늘은 또 어떤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지….
조향래(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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