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우리 밀

어떤 음식물이 좋고 건강한 먹을거리인가라는 질문에 흔히 '가까운 것 세 가지 법칙'을 답으로 내놓는다. '내 주변에서 나는 것' '제철 음식' '자연에 가까운 상태'라는 법칙이다. 먹을거리 하나에도 나름의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수입된, 가공 또는 냉동식품이 좋을 리 없다는 것쯤은 이치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밀도 이런 법칙이 무시되면서 한때 자취를 감춘 대표적인 우리 먹을거리다. 1980년만 해도 연간 9만2천t가량 되던 우리 밀이 1984년 정부수매가 중단되면서 생산이 거의 끊겼다. 2008년 기준 국민 1인당 밀 소비량이 연간 35㎏에 이르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매년 350만t의 밀을 수입하지만 우리 밀은 그동안 경쟁력을 잃고 버려졌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손이 거의 들지 않는 우리 밀은 농약과도 거리가 먼 안전한 먹을거리였지만 비싸다는 단점만 우리 눈에 보인 것이다.

1989년 우리 밀 자급률은 안쓰럽게도 0%였다. 생산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바로 20년 후인 올해 우리 밀 생산량은 2만8천t에 달했다. 2009년산 밀 재배면적도 5천67㏊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해 국내 소비량의 0.84%에 육박했다. 자급률 1%를 넘볼 정도로 되살아난 것이다. 20여 년 전 가톨릭농민회가 우리 밀 살리기 운동에 나서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조금씩 몸집을 불려온 결과다. 정부는 2012년까지 밀 자급률을 2.5%(5만t), 2017년까지 10%(20만t)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구호 밀가루에 익숙해진 입맛과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밀가루 수입으로 인해 우리 밀은 빈사 상태까지 갔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겨우겨우 살려낸 것이다. 우리 밀에 대한 인식변화는 건강한 먹을거리나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국제곡물가격 상승의 반작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것은 역시 좋은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요즘에는 우리 밀의 안전성, 면역 기능 강화'노화 방지 효능이나 수입 밀가루에 든 잔류 농약과 표백제 등을 꼬집어내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 너도나도 우리 밀만 찾는 바람에 앞으로 서민들에게는 우리 밀이 눈 씻고 봐도 없는 귀한 신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밀을 두 번 다시 멀리하지 않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밀이 우리 땅에서 계속해 밀알을 맺을 것은 분명하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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