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아름다운 기다림」/ 을지터그스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

보이는 모든 형체가 변할 때

둥지에서 고개를 한 번 살짝 들어 보이고는

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

가지가 나를 가지라 여길 때까지

침묵의 작은 부분이 될 때까지

팔십, 구십, 백 년을 꾸벅꾸벅 졸며 있고 싶습니다

몽골의 전통 악기 머린호르[馬頭琴]에는 몇 개의 죽음이 겹쳐져 있다. 우선 머린호르의 이유가 된 명마의 죽음이다. 그리고 초원의 무덤에 묻히는 자의 죽음과 그 죽음을 따라가는 새끼 낙타의 죽음. 초원의 무덤에는 새끼 낙타가 희생된다. 초원에서 무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무덤까지 새끼 낙타와 어미 낙타를 데리고 가서 새끼 낙타를 죽이고 이듬해 어미 낙타로 하여금 무덤을 찾게 한다. 새끼의 죽음을 기억하는 어미 낙타가 우는 곳, 그 울음은 머린호르의 떨리는 현 소리와 다르지 않다. 멀고 높고 넓은 그곳에서 자연에 합일한다는 것은 나무/나뭇잎이 나를 불러서 내가 잎사귀로 나무의 식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주어가 아니라 나무/자연이 앞장서는 곳이다. 몽골의 시인 롭상로르찌 을지터그스는 1972년 다르항 출신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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