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인기를 끌고 있다. MBC '선덕여왕', SBS '자명고', KBS 2TV '천추태후' 등은 모두 역사 속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과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고대사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역사와 너무 동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드라마의 내용을 살펴보자. 드라마에서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쌍둥이 딸 중 차녀라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진평왕은 쌍둥이가 태어나면 대가 끊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딸을 몰래 버리고, 딸 덕만은 유모의 품에 안겨 중국으로 도망간다. 덕만은 중국의 사막에서 온갖 역경을 겪으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학계에서는'미실'의 존재 자체도 불투명하게 본다. '미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등장하지 않고 '화랑세기'에만 등장하는데, 이는 1989년 필사본이 발견돼 아직도 진위 논쟁 중인 책이다.
이번엔 역사 이야기.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에 대해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장녀다. 어머니는 김씨이며 마야부인이다. 덕만의 성품은 관대하고 명민하였다. 진평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백성들의 옹립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나온다. 인물 설정은 같지만 덕만이 쌍둥이라는 부분과 덕만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고생하며 살았다는 내용, 중국어'로마어까지 구사하며 로마를 동경했다는 식의 설정은 작가적 상상력이 덧씌워진 내용이다.
드라마 '자명고'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에 등장하는 자명고가 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자명은 낙랑국의 왕 최리가 버린 딸로 나오는데, 최리는 자기 딸이 낙랑군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쌍둥이 두 딸 중 한 명인 자명을 버린다. 자명은 서커스단원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가 고구려 왕자 호동의 호위무사가 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면서 위태로워진 낙랑국을 구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역사는 이와는 다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낙랑국을 노리고 있던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적이 쳐들어오면 스스로 울린다는 낙랑국의 자명고와 자명각을 두려워했고, 이에 고구려의 호동왕자가 낙랑공주를 꼬드겨 자명고를 찢게 했다고 한다.
KBS 2TV '천추태후'는 어떤가. 헌애왕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손녀로 5대 경종의 비(妃)이며 7대 목종의 생모이다. 목종이 즉위한 뒤에 천추태후로 불리며 전권을 행사했으나 강조의 정변으로 권력을 빼앗기고 유배된 인물이다.
이 드라마는 천추태후를 북진정책을 수호하려 했던 여걸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부분이다. 시청자 중에는 천추태후를 둘러싼 역사적 관점을 두고 드라마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 역사를 소재로 하는 사극의 주요 배경은 조선이었다. 조선시대는 사료가 풍부해 철저한 고증에 바탕을 둔 사극 연출이 가능했던 반면 상상력의 개입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신라, 고려, 낙랑 등은 조선에 비해 사료가 희박하고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달리 말하면 작가가 상상력을 펼칠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흥미로운 상상력이 덧씌워지면서 고대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배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극이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인 만큼 상상력은 기본이다. 하지만 한번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자명 공주'를 낙랑의 실존인물로 여기기 전에 말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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