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달구벌이야기]22. 동성로

만남'집회'축제 등 끊이지 않는 표현 공간

동성로는 대구역 앞 대우빌딩에서 반월당까지 이어지는 거리다. 대구의 중심 번화가로 젊음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한데, 옷가게'영화관'백화점'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그로 해서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도심 최대의 보행구간으로 '시민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걷는 거리'라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자연스런 만남의 장소이자 집회'시위'축제가 끊이지 않는 표현 공간이 되었다. 아무튼 동성로는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작로이자 앞으로도 도심상권을 이끌어 나갈 공간이다.

읍성시대에는 진동문(지금의 제일은행 앞 네거리), 동문시장(지금의 대구백화점 자리), 동소문(지금의 자라 패션 남쪽 네거리), 남장대(지금의 중앙파출소 앞) 같은 성곽의 부속 건축물이 있었다. 또한 남성로'북성로'서성로와 함께 대구 최초의 신작로였으나 초기에는 교동시장 쪽에만 상권이 형성되었을 뿐 대구백화점 부근은 한적한 주택지였다.

해방 이후 6'25전쟁 피란시절까지 다방'빵집'음식점'영화관들이 많이 들어섰다. 그와 함께 교동과 화전동 일대에는 피란민들의 개척시장인 교동시장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강산백화점'옛 대구백화점 매장'세신백화점'교동백화점'동아백화점'한도백화점'한일아케이드'신한아케이드 같은 중급백화점들이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중반, 한일극장이 영화상영관으로 재개관하였다. 또한 대구백화점이 교동시장 입구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주변 상권이 크게 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유명 상표의 대형 매장이 동성로를 장악함으로써 '패션의 거리'로 불리는가 하면, '야시골목''통신골목''로데오거리'가 형성되어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마다 오월이면'동성로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대구백화점은 동성로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당시 가장 높았던 10층 높이의 건물을 지었으나 주변에는 드문드문 초가가 보일 정도로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서 우려의 소리가 많았다. 처음에는 3층까지만 매장으로 사용했고 4층 이상은 청구주택건설과 영남TV 같은 회사가 임대하여 사용하였다. 영남TV는 대구MBC의 전신이다.

한때는 제과점과 양장점이 거리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런던제과'뉴욕제과'뉴델제과'풍차베이커리 같은 대형 제과점과 오스카 양장점을 비롯한 크고 작은 양장점이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그런 가운데 편의방'태산만두'상주식당'인제약국'지구레코드사'교보문고 같은 가게들이 널리 알려졌다.

오늘의 동성로는 젊은이들의 유희와 축제의 공간이 되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브랜드와 스타일을 추구하며 거리문화를 선도하고 있어서 외국의 어느 도시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낯선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눈살을 찌푸릴 것이 아니라 마음껏 젊음을 발산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도시는 개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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