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해 전파되는 감염증을 전염병(傳染病) 또는 역병(疫病)이라고 한다.
역병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역병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인류의 생사를 좌우한 대표적인 원인이었고 전쟁이나 천재(天災)에 의한 사인(死因)보다 역병으로 인한 사망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를 멸망시킨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역병이었고 중세 말 유럽을 덮친 페스트는 근대사회를 여는 진통 역할을 했으며 발진티푸스'콜레라'이질 등은 큰 전쟁의 승패까지 갈라놓았다.
역병에 대해 정리된 최초의 기록으로는 BC 430년 그리스 아테네에 유행했던 역병을 기술한 투키디데스(그리스 역사가 BC 460?~BC400?)의 '전쟁사' 제2권 중의 '역병기'가 있다.
'아테네의 역병'으로 불린 이 역병은 발진티푸스'홍역'장티푸스의 융합형 또는 합병증으로 추정되는데 사망률이 25%에 달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병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온조왕(BC 18 ~ AD 28) 때 기역(饑疫), 신라 남해왕 9년(22년)에 대역(大疫)이 있다.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고, 인류 정치와 사회, 역사를 뒤바꿔 놓은 역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말라리아는 열대지방의 풍토병으로, 오리엔트와 교류를 통해 먼저 고대 그리스에 전해졌고 이어 이탈리아 반도로 전파됐다.
말라리아의 창궐은 그리스'로마 문명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고 '로마의 길'은 '말라리아의 길'로 불리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예종 17년(1122년)에 학질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학질이 바로 말라리아이다.
세계 역병사에 가장 참혹하게 기록된 역병은 페스트이다. 인도에서 아시아 남부에 걸쳐 서식하던 곰쥐가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과 먹이사슬의 변동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는데, 몽골의 서쪽 진출과 함께 13세기 말 유럽으로 옮겨갔다. 이후 1348년 흑사병의 대참극이 발생, 유럽 전역에서 3명 중 1명꼴인 2천만~2천500만명이 숨졌다. 이 대량 사망 사고는 중세 사회 붕괴의 시초가 됐고, 근대 사회 탄생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 후 유럽으로 옮겨온 매독은 149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발병한 뒤 1498년에는 인도, 1500년 중국의 남부지역인 광둥(廣東), 1510년 중국 베이징(北京), 1512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발병, 단 19년 만에 전 세계를 오염시켰다.
발진티푸스는 큰 전쟁 중에 발병해 전쟁의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이질과 발진티푸스는 프랑스군 장병의 3분의 2 가까운 생명을 빼앗아갔고 나폴레옹이 패퇴한 주요한 원인이 됐다.
F.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크림전쟁'제1차 세계대전'러시아혁명'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발진티푸스는 말라리아와 함께 참전국 병사들의 큰 사인(死因)이 됐다.
결핵도 오래된 질병으로 '백색 페스트'라 불리면서 19세기 유럽사회의 큰 사회 문제가 됐는데, 산업혁명 당시 가혹한 노동 조건과 열악한 생활 조건이 주원인이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구본호 대구시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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