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요?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 걸요."
윤달을 한 주 앞둔 16일, 수의 가게가 몰려있는 서문시장 1지구. 하지만 수의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상인들은 수의 대신 모시'인견 등의 물품을 제일 앞자리에 전시해두고 수의 박스들은 뒷전에 밀려나있다. 윤달이 다가오면 으레 수의 가게부터 붐비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수의 가게를 찾는 사람들도 "삼베로 여름 옷을 맞추고 싶다"는 정도다.
수의 전문 성주상회 관계자는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당신이 입고 갈 마지막 옷을 미리 준비해 두셨지만 요즘은 병원'장례식장에서 자녀들이 바로 구입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서문시장에는 한때 1지구'4지구를 중심으로 수의 관련 상가가 30~40개에 이를 정도로 성업했지만 지금은 20여개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문을 연 수의 가게들도 모시 등과 겸업하고 있다. 상인들은 그 이유에 대해 "경제가 어려운데다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해진 결과"라고 말했다.
"3년 전 윤달만 해도 집집마다 경기가 괜찮았어요. 그때도 물론 '장사가 잘 안 된다'고는 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죠. 요즘은 한 달에 한 벌도 못 팔 때가 많아요."
서문시장 수의 가게들의 쇠락을 부추기는 것은 지방을 돌아다니는 소위 약장사들. '질 좋은 수의를 사면 여러 가지 물건을 덤으로 준다'며 중국산 저가 수의를 마구잡이식으로 판매, 시골 노인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상조회 등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마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도 서문시장 수의 시장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서문시장에는 보통 30만~120만원 짜리 수의가 많이 팔린다. 이 가운데서도 80만~100만원 선 상품이 가장 인기 상품. 최고급 상품으로 통하는 안동포는 400만~500만원 선이다. 그 밖에도 남도삼베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요즘은 수작업으로 삼베를 만들던 노인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면서 그 공급량도 많지 않다.
요즘은 중국산 삼베가 가장 많이 유통되는데 이것도 질이 천차만별. 상인들은 "우리나라 삼베를 따라오긴 어렵지만 중국산 가운데서도 질이 좋은 고급 삼베도 많아 국내 중저가 대신 최고급 중국 삼베로 장만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수의는 여러 가지 사연을 품고 있다. 서문시장 1지구 달성상회 윤경희(55)씨는 "한 할머니는 돈이 생길 때마다 꼬깃꼬깃 접어서 장판 밑에 넣어두었다가 그 돈을 갖고 오셨어요. 돈은 거의 썩어가고 있을 만큼 오래됐었죠. 마지막 옷만은 번듯하게 준비하고픈 할머니의 마음 때문에 많이 깎아드렸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회상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두고 애틋한 마음들이 오고 가기 때문에 바가지 상술이 끼어들 틈이 없다. 2대째 수의 가게를 하고 있는 상인 이판구(57)씨는 "장례식장은 부르는 게 값인데다 그 삼베의 질을 확인할 길이 없지만 서문시장에서 직접 구입하면 두고두고 꺼내보기 때문에 가격이나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의값은 외상을 줘도 절대 떼일 걱정이 없다. '저승에까지 가서 빚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외상한 수의값만은 꼭 갚는다.
윤달의 위력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서문시장 수의 가게 상인들은 3년만에 돌아온 윤달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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