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작, Why?]고야

국가를 위해 민중들의 봉기를 그린 대표작품

*작 가 명 : 고야 (Francisco Goya, 1746~1828)

*제 목 : 1808년 5월 3일 (The 3rd of May 1808)

*연 도 : 1814년

*크 기 : 266.0x345.0cm

*재 료 : Oil on Canvas

*소 장 처 :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Prado Museum, Madrid)

호국의 달인 6월이 되자 남북관계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제히 비난을 받더니, 남북 화해의 무드로 조성된 개성공단에 대해 통행 및 체류 제한 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오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막내아들 정운이 권력을 승계한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김일성을 시작으로 3대째 세습왕조 대물림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은 내부적 갈등과 주민들의 불만이 점점 증폭되면서 또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로 6'25전쟁이 발발한 지 59돌을 맞는다. 전쟁이 현대사회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이를 합리화 시킬 수도 없는 인간사회에 있어 최고의 참변이다.

이 그림은 스페인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막지 못했던 국가를 위해 민중들의 봉기를 그린 스페인 화가 고야(1746~1828)의 대표작품으로 1808년 5월 3일에 있었던 마드리드 시민들의 처형장면을 담고 있다. 프랑스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쟁탈하기 위해 자신의 형 조제프를 스페인의 새로운 왕으로 임명한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자 1808년 5월 2일 프랑스 군대 산하의 모로코 용병의 폭력에 마드리드 시민들은 맨손으로 거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다음날 반란을 진압한 나폴레옹 군대는 오늘날 몬클로이라고 불리는 도시 외곽에서 봉기에 가담한 마드리드 시민 가담자들을 처형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6년 후인 1814년 스페인의 페르드난도 7세가 왕위에 복귀하고 해방이 되자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처참했던 그날을 두 개의 그림으로 남겼다. 고야 자신은 이 작품의 제작 동기를 '나폴레옹 침략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적이요, 영웅적인 저항을 기리기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의 좌측 하단부에는 바닥에 흥건하게 피가 고여 있는 땅위로 처형된 세 구의 시체가 서로 겹쳐져 있고, 그 뒤로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양팔을 벌린 채 프랑스 군대의 총구 앞에 서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남자의 자세는 마치 인류의 죄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남자 앞에 바짝 다가서 있는 군인들의 모습은 화면의 긴장감마저 주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다양한 자세로 표현한 시민들의 모습과 검은 하늘에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한 도시풍경은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명화이다.

김태곤(대백프라자 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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