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들과 점심식사 중에 취미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중 한 분이 요즘 사이클을 하는데 재미가 쏠쏠하고 무엇보다 아랫배가 많이 날씬해진다고 하길래 귀가 솔깃했다. 원래도 날씬한 체형은 아니지만 게으름을 나잇살로 위장해온 결과 불어난 허리 사이즈가 이젠 제법 부담스러운 터라 귀가 얇아졌다.
당장 사이클을 시작하겠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알아보니 초보자들을 위해 레슨하는 선생님도 있다. 금방이라도 뛰어갈듯 분기충천, 연락처를 알아내고 나니 기억 저편에 아련히 떠오르는 꿈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으로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었던' 꿈이었다.
수년 전 남편 직장 관계로 부산에 잠시 살 때 해운대 미포에서 동백섬까지 바다 수영을 하는 동우회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실내수영장에서 몇 년간 매일 새벽 1~2km씩 주파한 경험을 믿고 성격대로 저돌적으로 덤벼들다가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닷물과 밑을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바다의 심연으로 공포에 질렸던 첫 바다수영 경험이 떠올려졌다. 그러나 그날 동백섬 앞에서 출발해 미포까지 사력을 다해 완주한 후 성취감에 도취돼 공포는 곧 망각하고 바다수영을 즐겼던 경험이다.
그러면서 그때 트라이애슬론경기에 도전하고 싶은 꿈이 슬며시 생겨났다. 물론 아이언맨 코스의 완주는 언감생심이고 올림픽 코스라고 사이클40km, 마라톤 10km, 수영 1.5km의 단축 철인 3종 경기는 조심스레 엄두를 내보았다. 경기할 때 페이스를 조절, 초반에 체력이 소진되는 불상사가 없어야 하며 한 종목을 실패해도 조바심 내지 않고 다음 종목을 기다리면 성공할 수 있는 희망의 경기다. 세 종목간 조화와 균형을 맞춰 힘을 조절해야 성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인생게임과 유사한가? 철학이 깃든 스포츠 같아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바다에서 수영할 때 도착점 미포 고지의 깃발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1m만 더 가면 죽을 것 같은 극한을 짜릿하게 이겨내고 그때 분비되는 엔돌핀을 즐긴 기억이 환상적이었다. 그 황홀감에 매료돼 인간의 체력과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하고 싶다는 높은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라톤 10km는 무난히 질주한 경험이 있고 바다수영도 사력을 다하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사이클이었다. 그런 사이클을 가르쳐준다는데 왜 흥분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아직도 꿈꾸는 삶을 동경한다. 삶이 생각보다 길고 사람의 능력은 상상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나이로는 결코 젊지 않은 오십을 목전에 둔 날렵하지 않은 대한민국 아줌마가 꾸는 꿈 치고는 트라이애슬론이 과하고 헛되지 않을까 싶어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려 본다. 하지만 바랄 나위 없이 만족스런 삶을 살려고 자신있게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일상 속에서 예기치 않은 성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이 있다.
처음 트라이애슬론이 시작된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야자수의 늘어진 가지 사이로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페달을 밟을 그날을 위해 무릎이 깨지고 엉덩방아를 찧는 희생은 감수하기로 맘 먹은 올여름이 기대된다.
정현주(고운미피부과의원 원장)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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