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리 굿 한판 때립시다

우리 굿 한판 때립시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지 사람들은 모두 짜증이 나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한 판 붙자고 벼르고 있는 듯 모두 험상궂은 모습입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살겠습니까. 주머니에서는 동전 소리만 딸랑딸랑 나도 서로 친하고 서로 아껴준다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가만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굿 한판 때립시다.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고 황토를 바르고 정화수(井華水)를 뿌려 제단(祭壇)을 정화합시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모든 신을 불러모십시다. 그리고 단군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나시기보다 더 옛날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 모든 존재의 근원인 거룩한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갑시다. 나라님께만 맡기지 말고, 떡 얻어먹을 생각으로 구경만 하지 말고 우리 모두 스스로 제물이 되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칩시다. 이 지경에 어찌 네 탓, 내 탓 따지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루고 싶은 모든 것들을 엄숙 진지하게 기원합시다. 그리고는 신의 응답을 기다립시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 참회하고 기원합시다. 옛날 전국시대 제나라 경공은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스스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고자 했습니다. '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방 천리에 비가 왔다 하지 않습니까. 지극정성이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우리는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니 하늘이 외면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이육사는 그의 '광야'에 "가난한 노래의 시"를 뿌려 놓고 초인(超人)이 와서 목놓아 부르기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소멸을 전제로 한 죽음의 제의를 벌였습니다. 나를 희생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태초의 천지개벽과 신의 강림(降臨)이 본디 모습 그대로 반복되게 기원했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는 해 놓고 기다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어찌 천고 뒤이겠습니까. 내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제의적 광란(狂亂)이라 하는 난장판을 벌여 굿떡을 나누어 먹고 한바탕 신나게 놉시다. 네델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하(Johan Huizinga)도 인간은 호모루덴스(놀이적 인간)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잘 놀아야지요. 잠시 일손을 놓고 신명나게 놉시다. 놀이는 신이 나야지요. 신(神)이 내려야지요. 그래서 신의 경지에 들어갑시다.

그리고 맺힌 것 다 풀어버립시다. 성난 마음은 모두 풀어버리고, 모두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됩시다. 굿은 굳(good)이니까요.

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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