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사랑과 간섭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자주 간섭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아주 '작은'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아주 '큰' 일까지도 마구 간섭하려 든다. 얼마나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존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사랑과 간섭'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방을 향한 자기 자신의 향기로운 마음과 행동이라고 한다면, 그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 숨어서 그 본성을 드러내는 '간섭'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통해 자기 자신의 극대화된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는 극히 위험한 행동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조차도 교묘하게 위장되어 그 누구라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포장되어 있는 우리 이기심의 덩어리가 아닐까 한다.

도대체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을 할 때 그 사랑의 실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 단어를 내뱉는 것일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한 독선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른바 '간섭'이라는 것을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 간섭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만큼 우리는 자신 없는 사랑을 하면서 일평생을 살아버려야 하는 것인가?

자신의 말에 상대방이 귀를 기울일 때, 자신의 간섭에 대한 반응이 상대방으로부터 나올 때,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봐라,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이만큼 위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증명해 보이지 않니?"라는 말을 곧잘 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때에 이미 우리 마음속에는 '너를 향한 사랑' 같은 것은 접어버린 지 오래 되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위기의식은 심한 '간섭'으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언젠가 '내가 너를 사랑했었다'라는 사실까지도 거부하고픈 심정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때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 앞에서 위축되고 오그라들어서 아주 작게 되어버린 우리 모습을 발견하고서 '무서운 간섭'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한번 해보려 마음을 가다듬기도 한다.

그러나 저 사람을 내가 사랑하니 내가 저 사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위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나만의 생각이 우리를 엄습해 올 때 우리는 이 간섭하고픈 큰 유혹 앞에서 또다시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 유혹을 견딜 만한 큰 사랑이 우리에겐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은 하되 아무런 간섭도 안 한다면 그것이 참된 사랑이 아닐까?

우리의 지나칠 수도 있는 간섭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그것도 아주 쉽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는가 보군요"라고 말해 버린다. 아,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를 생각도 없이 우리는 곧잘 말하곤 한다. 상대방은 이 말에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 충격으로 인해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사랑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어쩌면 자신이 원치 않는 그 간섭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마음으로 그 간섭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다 전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똑같이 완벽한 포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고서 얻은 사랑을 도대체 어디에 쓸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사랑한다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어떤 포기도 하지 않도록 도와주자. 그 사람이 원하는 그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써 도와주자. 그렇게 쉽게 포기하도록 강요하다가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는 일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말이다.

정막래 교수(계명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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