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프로야구의 숨은 조연들 "그들이 있어 더욱 재밌다"

전광판 동영상 제작팀, 파울라인 볼보이, 관중들 보살피는 안전요원

방송실 내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손. 말 그대로 정중동(靜中動)이다.
방송실 내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손. 말 그대로 정중동(靜中動)이다.
안전요원 김진태(28)씨가 관중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 관중석에서 라면을 먹는 것도 안 된다. 이 때문에 관중석 컵라면의 맛을 아는 이들의 원성도 적잖다.
안전요원 김진태(28)씨가 관중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 관중석에서 라면을 먹는 것도 안 된다. 이 때문에 관중석 컵라면의 맛을 아는 이들의 원성도 적잖다.

대구 북구 고성동 3가 6번지. 27년째(1982년 프로야구 출범)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걸 구경하려는 이들. 땀 흘리는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이들. 대구시민운동장은 그들을 한데 섞는 그릇이었다. 그릇 속 사람들도 여러 가지. 특히 경기 운영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 경기장을 찾으면 볼 수 있는 이들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이들.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볼보이, 안전요원, 동영상 제작팀 등.

"1루 라인 끝에서 굴러오는 공을 받지요. 하루에 10번 정도 공이 굴러오는데 바로 받으면 절대 안 됩니다. 참, 공 달라고 하지 마세요. 연습에 재활용되는 공이라서요."

"사고가 없는 날이 없습니다. 지고 있으면 더합니다. 참, 담배는 경기장 밖 복도에서 피워주세요."

"관중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가 전광판이잖아요. 작은 방송국이라고 보시면 돼요. 저기… 경기 시작합니다. 잠시만요."

'딩동댕동~'

◆"공 하나쯤 줄 수 있지 않아?" 볼보이

벌써 2달째. 이미 일은 몸에 익었다. 공이 굴러온다. 누가 공을 달라고 할지 뻔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 전화번호를 알아둬도 소용없다. 경기 중에는 휴대전화기를 아예 갖고 들어가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제 재량권 밖입니다." "미안하지만 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모른 체하기에도 민망하다. 공 하나 때문에 경기장을 찾은 이처럼 끊임없는 설득도 보탠다.

"야, 그거 얼마 한다고 그라노, 하나 던지라. 어차피 파울볼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야구 한 경기에 준비되는 공은 100개 안팎. 나도 공을 막 줘버리고 싶다. 하지만 보는 눈이 한둘도 아니다. 공 하나를 주기 시작하면 줄을 서서 고함을 지를 게 눈에 선하다.

"야, 나도 하나 도!"

구단에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이 있어야 야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아니다. 내 이름은 김재완(23).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우연히 찾은 일이 이 일이다. 볼보이 한명을 뽑는 데 50여명이 지원했다니 인기가 대단한 직종인 것 같다. 솔직히 맞다.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돈까지 벌다니. 유명한 야구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면 외려 돈을 줘도 시원찮을 판인데.

볼보이를 뽑는다는 공고가 난 건 아니었다. 나 역시 친구 따라 원서를 넣은 것이었다. 볼보이라고 해서 당연히 삼성 구단을 떠올렸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 구단에서 뽑은 게 아니었다. 경비와 야구장 내 안전을 책임지는 업체 '팔공'에서 볼보이를 뽑는 걸 면접을 볼 때야 알았다.

2달이 지났지만 늘 재미있다. 여자친구를 만날 시간도 넉넉하다. 홈경기가 있는 날에만 일하지만 보수도 짭짤하다. 아르바이트다 보니 일당으로 돈을 받는다. 많은 달에는 80만원, 적은 달에도 60만원을 받는다. 야구를 보며 일을 하다 보니 당연히 이 일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쉽게 볼 일은 아니다. 평일 오후 6시 30분 경기가 시작되면 오전 11시 30분까지는 출근해야 한다. 선수들이 연습을 시작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 2시 경기가 있는 날에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하루 일과도 바특하다. 평일을 예로 들자.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는 라커 청소부터 시작, 선수들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그물망을 설치하고, 선수들이 마실 음료를 비치하고서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 오후 1시 30분쯤 되면 선수들이 연습을 시작한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할 일은 이제부터. 외야에서 작은 리어카를 끌며 공을 홈 플레이트까지 배달해야 한다. 힘든 일은 아니다. 원정경기 팀까지 연습이 끝나면 오후 6시. 그때부터는 경기에 사용될 공을 꺼내고 송진을 준비해 놓는다.

경기 시작부터는 라인 옆에 붙어 있기에 힘든 건 없다. 다만 공이 곧바로 날아와도 그냥 잡아선 안 된다. 안전 문제 때문에 구장 바닥에 닿았다가 튄 공만 잡아야 한다. 경기 뒤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오후 10시쯤이면 완전히 마무리된다.

참, 볼보이는 모두 4명이다. 여기에는 배트보이도 포함된다. 하는 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볼보이는 야구장 1루와 3루 끝에서 일하고, 배트보이는 심판에게 공을 나르고, 선수들이 남기고 간 방망이를 주워다 더그아웃으로 갖다 준다. 출근 시간이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차이. 배트보이는 경기 시작 1시간 전까지 출근하면 되지만, 볼보이는 6시간 전에 출근한다. 그래서 보수도 약간 다르다.

◆"아저씨, 여기 좀…" 안전요원

"20명 정도의 인원이 야구장 전체를 담당하고 있어요. 주차, 티케팅, 관중 안전까지 책임져야 되니까 바쁘긴 바쁘죠."

야구장을 찾은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봤음직한 안전요원. 등짝에 'security'라고 찍힌 검은 티셔츠를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야구장 내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에 남들이 스트레스를 풀 때 이들에겐 스트레스가 쌓인다. 호각, 무전기, 휴대용 랜턴을 항상 끼고 다니기에 특수해 보이기도 하지만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게 이들의 현실. 더군다나 공권력이 아닌 탓에 이들의 고초는 상당하다. 삼성 라이온즈의 경비를 맡고 있는 '팔공' 소속 김진태(28) 대리도 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됩니다." "저쪽에 저 사람도 피우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전 구장 내 금연이기에 구장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희한하게도 야구장은 치외법권 지역처럼 인식돼 있다. 야구장에서는 무엇을 하든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대구 FC의 축구, 동양 오리온스의 농구, LIG의 배구 경기에도 경비를 맡지만 야구장은 특별하다.

홈팀이 지고 있으면 더 긴장된다. 이럴 때 이들의 시선은 1루 측에 집중된다.

"3루 측 홈 팬들보다 1루 측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원정팀 응원단과 홈팀 응원단이 한데 섞인 1루 측은 이들의 중점 관리 지역. 원정팀 응원단상에 만취한 삼성 팬들이 오르는 일이 적잖다. 말려야 한다. 심지어 홈팀인 삼성 라이온즈가 지고 있다며 이들을 때리는 사람도 있단다. 이럴 때는 외려 미안해진다. 황당한 상황. 그래서 한다는 말이 "다음에는 꼭 이기겠습니다"란다.

이들도 경기 시작 5시간 전에 출근해야 한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표를 팔고, 경기장 입장은 2시간 전부터 하기 때문. 출근부터 이들이 챙기는 것은 국기 게양이다. 외국인 용병 선수들의 국기를 올리고, 삼성 구단의 깃발도 함께 올린다. 경기장 안에 있는 시설 점검은 필수. TV 등 가전제품 이상 유무를 확인한 뒤 선수단 차량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주차 공간도 확보한다. 표가 팔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안전 사고 등에 대비, 본격적인 경비 업무에 들어간다.

"야구장에서 소지품을 잃어버리는 분들이 많은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암표상만큼 소매치기가 많다는 사실을 귀띔한 김대리. 한 경기당 3, 4건의 분실 사고가 일어난다. 휴대폰, 지갑 분실 등 적잖은 이들이 희생양이 된단다. 심지어 관중이 많을 경우 직접 붙잡기도 한다. 이들의 일이 끝나는 것은 경기가 끝난 1시간여 뒤다. 경기가 끝나고 원정팀의 버스가 숙소로 가고서야 이들의 업무도 종지부를 찍는다. 이때가 오후 11시쯤이란다. 사고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 하지만 안전요원이라는 말 그대로 이들을 필요로 하는 관중들이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안전요원의 존재가치를 느낄 때 보람을 느낍니다. 경기장 안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불러주세요.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나도 나올 수 있는 거야?" 동영상 제작팀

"리플 틀어도 되겠다." "음악 넣어주고."

대구시민운동장 2층에 있는 중계실은 경기가 시작되면 적잖게 바쁘다. 전광판 하나에 무려 4명이 달라붙어 관중들과 소통을 시도하기 때문. 이동빈(24·여·동영상 총괄), 도환진(26·음향 담당), 김혜진(21·여·CG 제작), 그리고 장외 아나운서까지. 적게는 2년, 많게는 11년씩 야구장에서 일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르바이트생. 아르바이트를 2년 이상 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야구와 관련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저희를 두고 한 말이지요."

야구의 기본 규칙도 모르던 이들. 하지만 이제는 반 야구해설가. 그저 관중들과 호흡하려 했기에 가능했다. 왜 관중들이 열광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 홈팀이 공격할 때 바쁘게 움직이는 손놀림도 팬서비스의 일환이다. 심지어 야구장에서 프러포즈하는 이들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35억원을 들여 2002년 마련한 전광판은 야구 경기의 또 다른 눈이 된 지 오래. 이 때문에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벤트를 신청하는 이들이 꼭 있다. 5회 말 이후 쉬는 시간 10분여는 관중들의 시간. 말 그대로 '적절한 타이밍'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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