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망각이라는 괴물

'마더'(Mother, 2009년)라는 영화 제목에서부터 '머더'(murder, 살인)라는 피비린내가 배어 나온다. 원초적인 본능으로 제 새끼를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죽음은 물론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까지 서슴지 않을 '어미'로서의 충혈된 눈빛과 처절한 몸부림이 펼쳐진다. 그렇듯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의 또 다른 버전인 셈이다. 동반 자살을 시도하였던 애끊는 기억에다 마침내 동반 살인이라는 기막힌 추억까지 함께 짊어지고 가야하는 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오래 전 정신과 강의의 한 대목이 떠올려졌다. 바로 '선택적 망각'이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경험한 것들을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저도 모르게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에 남긴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심리적 방어기제의 하나로 제시한 데서 비롯된 '선택적 망각'에 의해서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생각 밖으로 정교한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실제로 자기공명영상법(MRI)으로 찍어보면, 선택적 망각을 할 땐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반응은 감소하는 데 비해 판단을 맡은 전전두피질은 뚜렷하게 활성화된다고 한다. 제 마음대로 지난 일들을 해석하고 판단하다가 나아가 제멋대로 엉뚱한 기억으로 조작까지 한단다. 영화 안에서 몸서리쳐지는 기억들을 잊기 위한 어미의 사투는 그 기억 자체보다 더 처절하고 눈물겹다.

춤인지 몸부림인지 모를 신들린 몸짓으로, 피 묻은 손을 감출 데 몰라 하는 황망한 눈빛으로, 이윽고 제 허벅지까지 찔려가면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자식새끼는 천연덕스레 평온하기만 하다.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누가 차 유리를 깨뜨렸는지 따위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까마득한 과거 속에 묻어버렸다고 여겨왔던 어릴 적의 동반자살 건까지 기어이 끄집어내면서도. 바로 얼마 전 스스로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마치 강 건너 남의 이야기 하듯이 주절주절 내뱉기까지 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어도 미쳐지지 않는 어미의 눈빛에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고통스럽고도 처연한 어미의 또 다른 날들이 내비칠 뿐이다.

제 맘대로 지웠다가, 제멋대로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일이 비단 정신과 병동이나,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망언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닐 게다. 하기 좋은 말로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라"라고들 하지만 우선은 제대로 된 기억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정작 챙겨 두어야 할 것들은 죄다 흘려보내고 제 속 편한 것만 바윗돌에 새겨 놓고서 저 혼자 깨춤을 추는 정경은 우스꽝스럽다. 때로는 피눈물이 배어 나도록 아프기까지 하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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