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국민통합의 조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위해 중도실용 노선을 지향하겠다고 하여 화제가 되고 있고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좌와 우의 대립을 넘어 중도의 길을 걸음으로써 국민통합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연일 중도와 서민을 강조하면서 시장을 방문하여 상인과 대화하는 이 대통령의 행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조성된 불리한 정국을 타개하려는 국면 모면용 제스처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국민통합을 위한 국정 쇄신의 신호인지는 아직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중도를 지향하여 이념과 소득계층과 지역으로 갈라진 국민을 통합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 500만 조문객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일부터 해야 한다. 비극적 상황이 조성된 데 대하여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 그러한 사과 없이 갑자기 중도를 표방하고 시장에 나타나 떡볶이를 드는 민생행보를 적지 않은 국민들이 동문서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부덕의 소치'라며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여 국민을 감동시켜야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길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우려하는 각계 인사들의 시국선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국정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법과 질서란 이름으로, 실용이란 명분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는지, 효율성과 경쟁력을 이유로 공평성과 연대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사회적 강자의 편에 서서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지 않았는지, 정치적 반대자와 비판자를 좌파로 몰아붙이는 낡은 냉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국정의 핵심에 있지 않은지,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지난 1년 4개월을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정치와 정책을 펴 왔음을 알 수 있다. '강부자'니 '고소영'이란 비아냥을 나오게 만든 인사정책, 지난 정부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태도, 종부세 인하에서 보는 것처럼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 기업 프랜들리 정책을 편다면서 추진한 대기업 편향, 수도권 편향, 사용자 편향 정책, 정권교체를 이른바 '우파반정'과 '좌파척결'의 기회로 생각하고 민주세력을 좌파로 몰아 배척하고 고립시키는 전략, 비판적 시민단체 고사 정책 등등, 이 모든 정치와 정책은 부자와 빈자,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와 분열의 골을 넓히는 데 기여해 왔다.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정치와 정책은 야당, 민주세력, 진보세력의 투쟁 일변도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독재냐 민주냐'라는 철 지난 구호가 다시 등장하고 '민주 대 반민주 '라는 낡은 구도가 되살아나고 있다. '낡은 보수 대 낡은 진보'간의 소모적인 '극단의 대결 정치'가 부활하여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 간의 생산적인 '중용의 대화 정치'는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이러한 퇴영적인 현상을 타개할 획기적인 국정 쇄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시대에 국민통합의 필수조건인 정치적 및 사회적 다양성 존중이 실현되는 국정을 펴야 한다. 모호한 중도 지향이 아니라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면서 합리적 진보와 대화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일시적인 인기 영합적 서민 지원 정책이 아니라, 대기업'부자'수도권 편향 정책을 철회하고 중소기업과 빈자와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과 지방을 위한 체계적인 재생 정책을 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세력, 노동자, 빈자, 지방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합리적 보수 인사 중심으로 정부를 새로이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정 쇄신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다시 민심을 얻어야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중심에 설 수 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 보수와 진보 간, 사용자와 노동자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수도권과 지방 간, 남성과 여성 간의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정하는 최종적 조정자의 역할을 유능하게 수행할 수 있을 때 국민통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 형 기(경북대 교수, 좋은정책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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