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장마철에 산뜻한 얘기가 훨씬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는 후텁지근한 장마철보다 더 찜통 같은 '죽음'이 아닐까 한다.
얼마 전 한 신인 여자 탤런트의 자살, 그 이전 잘나가던 최고 탤런트의 자살. 조용한가 했더니 또 한번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전 대통령 자살, 그런가 했더니 존엄사에 대한 법적'의학적'윤리적 정의, 사회의 반응, 가족의 반응, 특히 언론의 보도 태도, 또 이렇게 지나는가 했더니 세계 최고의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미스터리한 사망! 2009년 상반기 각종 매스컴에 줄줄이 이어졌고 지금도 그 여파가, 그 여진이 아직도 꺼지지 않는 죽음이다.
'죽음'(Death)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철학, 전문 분야, 인생관, 종교적, 가족관, 전통 등등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숨쉬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활동하던 인간이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 후의 인간이 영혼이 떠돌아다닌다는 등 내세를 말하는 것은 종교에서는 가능하나 현실과 의학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후가 아니라 사전에 죽음에 대한 철학, 개인관 등을 어떻게 소유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죽음이니, 불행한 죽음, 행복한 죽음, 불필요한 죽음, 골치 아픈 죽음, 하물며 잘 갔다고 즉, 호상이라고 불리는 죽음 등등… 다양하다.
필자는 의사라는 직업상 보통 사람보다 비교적 많은 '죽음'을 봤다. 1970년대 미국 유학시절, 엘리자베스(리사)라는 50대 중반의 미국 여자로 유방암 환자가 있었다. 폐에 물이 차서 들어왔는데 검사를 해보니 유방암 말기였다. 차마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검사 후 1주일째 환자가 묻는다.
닥터, 네 병의 진단을 꼭 알아야 되겠어요? 물론 당연하죠. 네 검사 결과는 유방암이 퍼져서 폐에 물이 찼습니다. 표정이 바뀌더니 한참 있다가, 그러면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교과서적으로는 3개월,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것 아시죠? 그녀는 에티오피아에서 기독교 선교사로 20여년째 일하던 중이었다. 아무 말이 없다가 매일 회진 때 "안녕하세요?"하고 지나쳤는데 3일 후 무언가 대화하고, 위로하고 싶어 입원실에 들어갔더니 책상 위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뭐하세요? 편지 쓰고 있어요. 무슨 편지요? 친구들에게 쓰고 있어요. 친구 많아요? 네, 좀 있어요. 무슨 내용인데요? 주로 사과와 용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면 사과 드려요, 용서하세요, 물론 감사의 편지도 쓰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3개월 후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검진 결과가 나온 후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엘리자베스는 그 병원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원한 등에 죽어가는 환자들, 가족의 갈등 속에서, 축복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들, 그 많은 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들! 온갖 이유로 자살한 사람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지만 죽음은 인생의 한 단계라고 한다. 또한 누구든지 죽는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매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죽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최근 한 모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임의 명칭이 '쓰죽회'인데 '쓰고, 죽자는 모임'이란 뜻이란다. 재산을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니 다 쓰고 죽자는 취지라 했다. 조금은 다른 점이 있지만 '스테판 폴란'이란 미국 사람이 쓴, '다 쓰고 죽자'라는 책이 있다. 그 중에 '다 쓰고 죽어라, 유산이 없으면 자식들이 다툴 일도, 가산을 탕진할 일도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돈 있는 사람들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다 쓰고 죽어야 할 것이 꼭 '돈'만은 아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소질, 철학, 마음, 정신, 신체 등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인간이 태어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각자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쓰고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죽음관, 인생관이 아닐까?
다 쓰고 죽자! 그리고 병에 걸려 죽든, 또 온갖 이유로 죽든, 자살하든 그 마지막 단계에서 용서와 사과, 화해가 깃든 그런 죽음!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 아닐까?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살은 최고의 죄악이요, 또 살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의 묘비명에 '다 쓰고 죽었다 후회 없다'라는 글귀를 남겨보자.
윤방부(가천의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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