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절과 무관심' 아파트, 마음을 열다

단절과 무관심, 소통 부재의 공간으로 알려진 아파트가 문을 열고 마음을 열고 있다.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인근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열어 온 동네 축제가 됐고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영화관을 빌려 임시 동네 영화관을 꾸몄다. 달서구의 새 아파트에서는 젊은 엄마들이 마을 도서관을 운영하며 아파트를 옛날 '마실'처럼 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파트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문화'였다.

▶가족 음악회를 열어요

수성구 만촌3동 '대림이편한 세상'에는 최근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렸다. 17일 밤 아파트 분수대 주변에서 가족 음악회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본 입주민들의 입이 벌어졌다. 여름밤 무더위를 피해 인공폭포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곳에서 뭐 근사한 걸 할 수 없을까' 궁리 끝에 음악회를 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플래카드가 걸린 후 아파트 관리사무실에는 신청자들이 몰리고 있다. 어떤 입주자 가족은 첼로를, 어떤 가족은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고 한 부부는 가곡을 부르겠노라고 신청했다. 김경옥(50) 주부는 "아파트 안에서 가족들 음악회가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들뜬다. 입주민 모두가 한동네 사람임을 느낄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큰 행사인것 같다"며 가족 음악회를 반겼다.

아파트 측은 가족 단위의 신청자 외에 외부 공연자들도 초청할 계획이다. 소프라노, 어린이 중창단, 가수들도 함께해 품위 있고 친근한 음악으로 1시간 30분 동안 여름밤을 멋지게 꾸밀 생각이다. 손숙연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예상 외로 호응이 너무 좋다. 아파트 입주민의 수준에 맞는 고품격 음악회를 선보이려 한다"고 했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앞으로 정기적으로 음악회나 문화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성구 매호동의 '한일 유앤아이' 아파트에서는 지난달 14일 '음악 그리고 이웃 사랑'을 주제로 음악회를 열었다. 이 음악회에는 입주민은 물론 인근 동네 주민들까지 몰려 1천500명이 넘는 이들이 함께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시골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음료수와 과자는 일찌감치 동이 나고 관객들이 몰리는 바람에 황급히 의자를 준비하는 일도 벌어졌으나 모두들 즐거워했다. 수성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익숙하고 감미로운 클래식 연주에 1천명이 넘는 관중은 기립박수로 화답했고 외부 초청 가수들의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했다.

3월부터 음악회를 준비한 민승일 관리사무소 소장은 "음악회를 해보자는 입주민의 제안에 따라 음악회를 추진하게 됐다. 마침 수성구청의 지원을 받아 아주 멋진 음악회를 열수 있었다" 며 "이런 행사가 아파트 문화를 바꿀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린 영화관에 가요

북구 침산동 '침산하늘채 2단지'의 주민들은 요즈음 밤마다 시내에 있는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아파트 측에서 마련한 여름밤 영화 보기 행사 덕분이다. 처음에는 아파트 한 공간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려 했으나 비용이나 관리 문제 때문에 시내에 있는 영화관 480석 한관을 대여했다. 기간은 1일부터 3일까지. 영화는 어린이용, 가족용, 누구나 즐길수 있는 것 등 3편을 선정해 주민들이 원하는 날짜에 신청하면 아파트관리소에서 영화표를 나누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현수막이 걸리자 당일 500매가 나갈 만큼 인기를 얻었다. 이영균(45)씨는 "동네 주민끼리 영화 보고난 후 자연스럽게 여러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며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려 주민끼리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정오 소장은 반응이 너무 좋아 내년에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각종 문화강좌도 있어요

수성구의 '범물 청구아파트'는 4월 문을 연 아파트 내 문화센터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예교실 한자교실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수강료는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다. 서예교실의 경우 주민인 예보순씨가 가르치고 있고 요가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일주일에 3일 지도하고 있으나 자리가 좁을 만큼 인기다. 천계순 아파트부녀회장은 "먼곳까지 가지 않고 바로 아파트 내에서 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모여 하기 때문에 서로 친밀해지는 사교의 장이 되고 있다"며 자랑한다.

달서구 유천동의 '대곡역화성파크드림'은 도서관 운영으로 주민들의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입주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30명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고, 대부분 30대 젊은 엄마들인 자원봉사자들은 도서관 일뿐 아니라 아파트 일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정이 넘치는 아파트로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도서관에서 문화강좌를 열고 어린이 영어, 동화책 읽어주기 등의 강좌를 마련했다. 곽윤미 문고위원장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입주민들에게서 받은 이해와 지원을 또 다른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파트 일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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