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善意의 함정

공정무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천연 화장품 회사인 '더 바디 샵'(The Body Shop)이다. 이 회사는 1991년 '원조가 아닌 무역'이란 캠페인을 통해 저개발국가의 상품을 착취적인 시장가격보다 높은 값에 구매하자는 운동을 대중화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더 바디 샵'은 가나의 농촌에서 식물성 기름의 일종으로 화장품 원료인 '시어버터'를 원산지 가격보다 50% 높은 값에 사들였다. 그러나 몇 년 뒤 이 회사는 주문량을 대폭 축소했다. 비싼 값에 산다고 하자 시어버터 열풍이 불면서 사들이려는 물량의 4배나 과잉생산된데다 시어버터의 국제 수요도 예상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그 후 이 회사는 '원조가 아닌 무역'이란 문구를 조용히 중지했다.

커피 공정무역 바람이 분 것은 커피 재배 농민들이 실제로 쥐는 돈이 최종 소비자가 지급하는 금액의 0.5%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다국적 기업의 착취도 그 원인의 하나였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과잉생산이었다. 2001년 세계 커피 원두의 수요는 연간 1억500만 자루(자루당 60㎏)였으나 공급량은 이보다 1천만 자루가 더 많았다. 그러자 국제 자선단체 옥스팜은 자선적 가격 정책을 지속하되 과잉생산된 500만 자루(1억 달러어치)는 각국 정부와 기업이 구입해 폐기 처분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선진국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커피를 사면서 지불하는 추가 요금이 재배 농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폐기 처분 비용으로 허비된다는 것을 뜻한다.

1993년 미국 의회는 '탐 하킨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동착취'를 막기 위해 외국에서 미성년 노동자가 만든 제품의 미국 내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은 명시적이진 않았지만 방글라데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은 고용하고 있던 어린이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장에서 쫓겨난 어린이는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지나 매춘부로 전락했다.

善(선)한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집단 간 이익이 충돌하는 경제 분야는 특히 그러하다. 일자리가 많고 사람값이 높아져 정규직이 아니고는 사람을 쓸 수 없다면 비정규직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는 이러한 기초적인 경제원리마저 무시한 이상주의가 낳은 慘禍(참화)다. 비정규직보호법이 남긴 교훈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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