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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갤러리] 전함 테메레르호의 최후

전함 테메레르호의 최후

작가: 윌리엄 터너(J. M. William Turner:1775~1851)

제작연대: 1838~39년

재료: 캔버스 위에 유채

크기: 91×122cm

소재지: 영국 런던 국립미술관

오랜 기간 동안 유럽미술사에서 변방으로 치부되어 대륙 미술품의 소비지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던 섬나라 영국은 19세기에 이르러 걸출한 화가들을 배출하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터너이다.

24세 때 이미 왕립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될 정도로 조숙한 터너는 17세기의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인 푸생(Poussin)과 로랭(Lorrain) 그리고 네덜란드의 자연주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자신의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그 중 한 작품은 항상 로랭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 정도로 그의 목표는 로랭이 이룬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820년 전후부터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색채에 밝기와 빛을 더함과 아울러 점차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면서 적어도 풍경화에서는 로랭과 네덜란드 화가들의 경지를 넘어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터너는 서정적 직관, 그리고 작가와 자연 사이의 신비한 교감을 기반으로 환상적인 일몰이나 신비한 빛, 자연의 폭발적인 역동성 등의 소재를 자유롭고 개성적인 묘법으로 표현했는데,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작인 '전함 테메레르호의 최후'를 보면 그가 빛으로 가득 차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환상적인 자연을 얼마나 동적이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60세가 되던 해 작가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군의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를 물리치고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승리를 안겨준 전함 테메레르호가 그 수명이 다해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증기선에 의해 해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당시 이 배는 옛 영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의 폐선이 되었으나 작가는 이미 없어져 버린 돛대 3개를 웅장하게 복원하고, 또 석양을 배경으로 채택함으로써 이 범선의 최후를 마치 화려한 영광을 뒤로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는 늙은 퇴역 장군의 그것처럼 웅장하면서도 비장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미술사적 의의는 색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면은 주홍과 파랑이라는 한 쌍의 보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록 일부분에 국한되지만, 원경의 빛이 비치는 부분과 그늘진 부분이 각각 주홍과 파랑으로 채색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흰색과 검은색으로 처리되던 전통적인 명암법이 여기서는 보색으로 대체되어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명암법은 사실 우리의 시지각(視知覺)에 더 가까운 것으로 훗날 자연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인상주의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권기준(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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