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포은과 야은

圃隱(포은) 정몽주(1337~1392)와 冶隱(야은) 길재(1353∼1419). 두 사람은 사제간이다. 두 사람은 신생 조선과 惡緣(악연)이었으나 조선에 미친 영향은 컸다. 고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스승인 포은은 易姓(역성)혁명에 반대, 조선 개국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또 제자 야은은 조선의 신하 되길 거부하며 후학 양성에만 힘쓰다 생을 마쳤다. 한때 같은 마을에 살며 친하게 지냈던 태종 이방원의 어떤 벼슬도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은 조선의 신하는 되지 못했으나 조선의 통치철학인 儒學(유학) 뿌리 내리기에는 많은 기여를 했다.

포은은 안향으로부터 시작된 주자학을 스승 牧隱(목은) 이색으로부터 배워 이를 야은에게 가르쳤으며 야은은 다시 점필재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를 길러냈고, 김종직은 또 김굉필을, 김굉필은 역시 조광조를 키우는 등 포은과 야은의 학맥은 신생 조선의 유학이 자리 잡는 데 밑거름이 된 셈이다.

요즘 不事二君(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의 충절로 후세의 귀감이 된 두 사람을 기리는 사업들이 두 사람의 고향 땅에서 다양하게 펼쳐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포은의 고향인 영천에서는 포은 선생을 모신 임고서원 성역화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착공, 내년 9월 완공예정으로 121억 원이 투입되는 성역화 사업이 완성되면 유교 학습 및 체험장으로 활용되는 등 새로운 문화 체험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은이 태어난 구미(선산)에서는 '冶隱 아카데미'가 지난달 생겼고 야은을 모신 서원을 새롭게 단장하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야은 아카데미는 전국 名士(명사)를 초청, 특강으로 야은의 학자적 기풍을 본받고 시민 의식수준을 한 단계 높여 평생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취지다. 연말까지 15차례 특강을 통해 야은을 재조명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8일부터는 야은 등 유학자 5위를 모신 금오서원 보수공사가 시작됐고 내년엔 야은기념관 건립도 추진할 움직임이다.

두 사람을 기리는 행사나 사업 추진 못잖게 충분한 준비와 차질 없는 공사 진행도 중요하다. 벌써부터 임고서원 성역화 사업이 졸속으로 추진돼 말썽(본지 6일자 4면 보도)이라 한다. 포은 선생의 유적을 보존은커녕 훼손하면서 사업을 벌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성역화 사업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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