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신작 리뷰] 야하지 않은 다섯 색깔 에로스…오감도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 5명의 단편을 한데 모은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 옴니버스는 한꺼번에 여러 편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딱히 무엇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오감도'는 전혀 다른 색깔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후회하는 사랑 이야기다. 에로스(eros)를 강조했지만 그다지 야하지는 않다. 그저 여배우의 벗은 몸매 일부와 진한 키스 장면이 나오지만 그 뿐이다. 야한 것을 기대하고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색깔이 다른 다섯 감독이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다. 다만 단편의 특성상 지나친 비약과 생략 때문에 다소 친절하지 못한 영화가 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감도-his concern(감독 변혁)

혼자서 기차를 탈 때면 누구나 설렘을 갖는다. 남자라면 젊고 예쁜 아가씨와, 여자라면 훤칠한 미남 청년이 곁에 앉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경험했듯이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객차 안을 눈 씻고 찾아봐도 미남·미녀는 완전 실종 상태이거나 행여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고 해도 짝이 있거나 일행이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인 회사원 민수(장혁)는 그런 점에서 운이 억세게 좋은 친구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에 앉은 여자와 결혼한 친구까지 있다보니 부산 출장길에 KTX에서 앞자리에 앉은 갤러리 큐레이터 지원(차현정)과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매끈한 다리의 각선미에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는 민수. 용케 말 한 마디 건네나 싶었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는 정적이 밀려든다. 부산 출장길인데도 지원을 따라 천안에서 내려버린 민수.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고, 서울에서 다시 첫 데이트를 하는 날 둘은 지원의 집에서 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얼핏 뻔한 러브 스토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 민수의 독백 내레이션이 톡톡 튀는 유머를 선사하고, 적절하게 시간을 넘나드는 편집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했다.

◆오감도-나 여기 있어요(감독 허진호)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통해 깊은 사랑의 아픔을 전했던 허진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짧지만 여운이 긴 사랑을 들려준다. 현우(김강우)는 아내 혜림(차수연)을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이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 아내는 늘 집안 어딘가에 숨어서 남편이 찾아주기만을 기다린다. 그윽한 눈빛으로 혜림을 바라보던 현우는 진한 키스를 시작으로 사랑을 나누려 한다. 몸이 뜨거워진 혜림이 "오늘은 끝까지 하고 싶다"고 말하자 갑작스레 현우의 낯빛이 바뀐다. "병원에서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내 혜림은 몸이 아프다. 늘 숨바꼭질을 하는 아내는 마치 떠남을 준비하는 듯 하다. 어느 날 병원의 전화를 받고 수술을 위해 짐을 꾸려 집을 나서는 부부.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현우 뿐이다. 이미 떠났음을 알지만 현우는 습관처럼 집에 들어서자마자 "혜림아!"하고 불러본다. 채 열어보지도 못한 여행가방 속에서 아내의 옷을 꺼내며 상념에 잠기는 현우. 급기야 침대에 누워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 때 누워있는 현우를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는 혜림.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과 죽어서도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의 애절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오감도-33번째 남자(감독 유영식)

배종옥의 베드신이 첫 장면에 나온다. 실제 배종옥의 모습인지는 의문스럽지만. 아무튼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 속에 한 남자와 숨가쁜 섹스를 마친 박화란(배종옥)에게 다가서는 공포의 그림자. 그는 바로 김미진(김민선). 섹스를 나눈 남자를 처참하게 살해한 뒤 화란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데. 갑작스레 웬 공포영화일까. 알고 봤더니 영화 촬영장면이다. 천재감독으로 알려진 봉찬운(김수로)이 찍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었던 것. 배우 김미진은 제대로 비명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감독에게서 100여차례가 넘는 재촬영을 요구받는다. 지칠대로 지친 미진은 화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영화 촬영도 무사히 마친다. 촬영이 끝나던 날 감독 찬운은 미진을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미진은 찬운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침대에 눕게 만드는데. 러브 스토리로 끝나는가 싶던 영화는 다시 급반전. 찬운을 덮친 미진은 갑작스레 흡혈귀로 변신한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33번째 남자'는 '아나키스트'를 연출한 유영식 감독 작품이다.

◆오감도-끝과 시작(감독 민규동)

거친 숨결 소리와 함께 카섹스를 나누는 남녀의 나체 장면으로 시작한다. 길가에 차를 세워둔 채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 하지만 핸드브레이크가 풀린 자동차는 서서히 도로 안쪽으로 향하고, 급기야 달려오는 트럭과 충돌한다. 하얀 뼛가루로 돌아온 남편 재인(황정민)을 강가에서 떠나보내는 아내 정하(엄정화). 그곳에 남편과 불륜의 사랑을 속삭이던 상대 나루(김효진)가 찾아온다. 정하는 남편의 뼛가루를 나루의 얼굴에 뿌려버리고, 나루는 얼굴에 묻은 뼛가루를 먹는다. 그리고 시작된 정하와 나루의 기묘한 동거. 정하의 모진 학대에도 아무런 말 없이 견디는 나루. 그녀는 도대체 왜 이 곳에 온 것일까? 어느 날 죽은 남편의 생일상을 차려주러 나온 강가. 그 곳에서 나루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연 사랑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지 되묻게 만드는 이 작품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이 만들었다. 몽환적 분위기와 함께 기묘한 이야기의 전개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랑 이야기.

◆오감도-순간을 믿어요(감독 오기환)

'작업의 정석'을 연출한 오기환 감독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위험한 스와핑을 감행하는 고교생 세 커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은 의심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믿음으로 시작해서 의심으로 끝나는 것일까? 비록 고교생 세 커플의 철부지 사랑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진지하게 사랑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스와핑을 택한다. 사랑을 나누고 말고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책임이며, 그 날의 일은 묻지 않기로 한다. 과연 이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물론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6명의 커플이 등장하다보니 누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와 스와핑을 했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될 정도로 복잡하다. 가뜩이나 짧은 시간에 6명의 감정 변화와 사랑과 배신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서두른 기색이 역력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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