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요직으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한직으로 밀려나는 측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연 등 불공정한 기준 때문에 밀려난 사람이라면 적잖은 심적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김병일(56) 한국자금중개㈜ 사장도 그랬다.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 재정경제부에서 요직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김대중 정부 때 떠밀리기 시작했는데 "대구경북 출신이란 것 외에는 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재경부 재정융자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갑자기 세무대학 서무과장으로 발령내더니 뒤이어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교육홍보국장 등으로 전전하게 됐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급기야 건강까지 악화돼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저 자신이 그렇게 서글퍼 보일 수 없었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던 게 오늘날 그를 있게 했다. 영어 공부를 하며 와신상담했다. 한직에 있던 3년 6개월 동안 집에서 매일 영어책을 2시간 동안 소리 내 읽었다. 미국 유학까지 했지만 스피킹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회는 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EBRD(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로 발령난 것이다. 그동안 익혔던 영어 실력으로 현지의 각종 모임에 참석, 농담을 섞어가며 연설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서 업무 능력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재경부를 떠난 지 8년 7개월 만인 2007년 8월 국장으로 복귀, 지난해 3월 공직을 떠날 때까지 근무했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며 쉬운 일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떤 일이든 좋은 결과를 보려면 부단한 노력과 고심'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 정신과도 맥이 닿는다. 그는 "열심히 일해 성과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보상을 받는다면 잘못된 것"이라며 "노력 결과와 관계없이 똑같은 대우를 받겠다는 풍토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EBRD 이사로 있을 때의 얘기를 덧붙였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불가리아 출신의 EBRD 이사가 과거 체제와 자본주의로의 전환 이후를 비교하면서 "사회주의 체제 때는 모두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파이가 커지지 않았으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파이가 커져 생활도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
공직 생활이 힘들었다지만 보람됐던 적도 있었다. IMF 외환 위기 때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던 기업들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재경부 재정융자과장으로 국가 보유 채권을 은행의 후순위채권과 교환하는 방안을 마련해 관련 부처 장관 등을 설득, 관철시킴으로써 은행의 BIS 비율을 높여 기업에 대한 대출을 유도했다는 것. 국세심판소 조사관으로 있을 때는 대구에 있는 모 건설회사에 대한 국세청의 300여억원 법인세 부과가 무리하게 과세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 관련 회의에서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취소시켰단다.
2008년 3월 한국자금중개로 옮긴 이후에는 공직생활 중 금융 관련 분야를 맡은 경험이 적잖은 힘이 됐다. 이 회사는 금융 기관 간의 단기 콜자금 거래와 각종 외환 및 채권 거래 등을 중개하는 게 주업무이다.
김 사장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조업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에 주력해야 한다"며 "지역 여건을 고려할 경우 의료'미용'관광'휴양'쇼핑 등을 포괄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게 경쟁력이 높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상주 출신으로 대구 수창초교'대구중'경북고'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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