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수술실 의자

내 수술실에는 내가 앉아서 수술하는 의자가 있다. 수술현미경을 가지고 수술할 때 사용하는 의자다. 20여년 전에, 그때로서는 거금인 200만원을 주고 샀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마련해준 것이다. 비싼 의자라 하여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술할 때 손이 움직이지 않도록 팔을 얹을 수 있는 팔걸이가 양측에 있고, 수술현미경을 조작하기 위해 내 몸의 높낮이를 바꿀 필요가 있을 때 지렛대 같은 것을 발로 밟아 의자의 높낮이를 변하게 하는 그런 의자다.

이 의자에 앉아 많은 환자를 수술했다. 장시간 수술하기 때문에 궁둥이가 아파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몸통을 들었다 놓았다 한 적도 많다. 그때마다 의자도 약간은 지겨운 듯 조금씩 움직이고 삐걱거린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큰 불평 없이 내 몸의 하중을 잘 견뎌내 주었다. 생명을 구하는 모습도, 유명을 달리하는 환자도 보았겠지만, 한 번도 수술실 안의 환희와 슬픔에 대한 것을 말한 적이 없다. 오직 자기 등을 내밀어 내 궁둥이의 하중만 말없이 견디며 살아온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평생 살다가 다리가 부러져 혹은 등이 터져 사라질 것이다.

문득 의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높은 신분을 나타내고자 '의자'를 처음 사용했다고 하지만, 그래서 태생의 기원이 신분의 높이를 나타내려고 생겨난 몸이라고 하지만, 또한 내 의자는 비싼 가격으로 수술실로 팔려온 몸이지만, 한 번도 남의 등을 오르지 못하고 내 가볍지 않은 체중을 묵묵히 평생 지고 오고 있는 것이다. 명예와 부와 영광을 모두 나한테 넘긴 채 말없이 등을 굽혀 삶의 하중을 견디며 불평도, 아픔의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이렇게 묵묵히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 세상에 수술실 의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없으랴. 한 번도 남의 등에 오르지 못하고, 평생 남의 부와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등을 굽혀 삶의 하중을 지고 견디며 살아오다가, 어느 날 문득 등이 아프고 무릎이 저리다 하고 울먹이고는, 마침내 등을 꺾고 무릎을 꿇는 이웃이 어찌 없으랴. 그렇지만 그들은 안다. 평생 자기 등을 타고 살아왔던 사람들도 자기들과 똑같이 자기 등을 굽혀 지고 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나이가 들면 자기들과 똑같이 어깨가 처지고 허리가 굽고 그리고 그런 곳들이 쑤시고 아프다고 호소한다는 것을. 앉았다 일어서면 없어지는 것이 자리이고, 쥐었다 놓으면 껍데기만 남고 사라지는 것이 명예와 부와 영광이라는 것을, 내 수술실 의자 같은 사람들은 알고, 그래서 그들은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말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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