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에게 이번 여름방학에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로봇을 실컷 만들고 싶어요." 머뭇거림 없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또 다른 계획은 없느냐고 물으니 사회공부를 해야겠단다. 다른 교과목에 비해 사회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 댁에서 흙 파기 놀이를 할 거라고.
열한 살인 조카의 방학계획 중 로봇 만들기와 흙 파기 놀이는 100% 실천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가 친정집을 방문할 때면 이 아이는 늘 두 가지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카의 꿈은 일찌감치 정해졌다. 로봇 과학자가 꿈이다. 어느 누구도 권하지 않은 오로지 본인의 의사다.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니 그냥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다.
조카는 나이답지 않게 연장을 잘 다룬다. 장도리, 톱, 드라이버를 능숙하게 만진다. 얼마나 많이 조이고 풀어봤으면 어른 손놀림처럼 자연스러울까. 옆에서 아이의 움직임을 보면 참 재미있다. 조카는 주말이면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지낸다. 마당 흙과, 뒤 곁 텃밭은 좋은 놀이터다. 호미로 땅을 파서는 물을 부어보고, 대못을 마당에 박아보고는 이곳은 땅이 더 단단하다, 저곳은 모래가 더 많다는 등 체험에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한다.
어느 날에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서는 보자기를 망토라고 걸치고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화살이 날아간 거리를 재어보고 바람의 방향까지 들먹였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남들이 가는 편편한 길보다는 울퉁불퉁한 곳으로 다닌다. 때로는 다칠까봐 주의를 주지만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초등학교 4학년, 벌써 진학하고 싶은 고등학교를 정했단다. 경산에 있는 과학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고모가 사는 곳에도 과학고등학교가 있다고 했더니 경상북도가 주소지라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 학교에 가려면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 한다고 했더니 알고 있단다. 특히 수학, 과학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제 작은아버지의 아들이 첫돌을 맞이했는데 수학과 과학 공부를 많이 시키라고 하더란다. 어린 나이지만 나름의 생각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카가 사는 곳은 작은 소도시다. 밤늦도록 전등이 꺼지지 않는 학원도 없다. 어느 학원 강사가 잘 가르친다는 소문도 없다. 특목고 열풍에 편승해 정보를 수집하러 다니는 열성 부모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아이에 대해 믿음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머릿속에서 자유로이 떠다니는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적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오감을 동원해 두들기고 자르고 붙이면서 완성을 위해 수없이 생각을 뒤집어봤을 것이다. 만약 톱이 날카롭다고, 망치가 무겁다고, 호미로 마당을 파 뒤집어놔서 보기 흉하다고 해서 행동을 말렸다면 불만만 키우지 않았을까.
조카의 앞날에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 있다. 통과의례에 필요한 학습능력도 장담할 수 없다. 또래 아이들이 여름방학 동안 콘크리트 건물에서 연필을 쥐고 문제풀이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면 불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나사를 조이고 푸는 열한 살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이 아이의 창의성을 충분히 인정해주는 교육제도가 빨리 정착되었으면 한다.
장남희(운암고 3년 임유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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