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에 따른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은 중국의 문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반부터 '국가급' 역사문화도시를 지정하기 시작한 중국은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103곳으로 역사문화도시를 크게 늘린 데 이어 보존 위주의 고도(古都)정책에서 문화재 복원과 개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개발 정책이 역사테마파크다. 지금 중국의 역사문화도시는 역사 주제 공원 건설을 통한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경주와 같은 '고도(古都)형' 역사문화도시의 대표격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과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허난성(河南省) 카이펑(開封)이 이 같은 역사문화도시 간 경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시안이 13개 중국 왕조에 걸친 천년고도라면 항저우는 남송(南宋)의 수도로서 송나라 문화의 꽃을 피운 고도다. 카이펑은 시안과 항저우에 비해서는 덜 유명하지만 옛 중원(中原) 지방의 중심이자 송나라(북송)의 수도로서 옛 영화의 복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북송과 남송의 수도였던 카이펑과 항저우가 각각 당시의 송나라 수도를 생생하게 묘사한 '청명상하도'를 그대로 재현한 역사 주제 공원을 건설, '원조' 송나라 문화 전쟁을 벌여 전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문화도시들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 등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재구성한 대형 오페라와 뮤지컬을 제작, 공연 경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중국의 역사문화도시들은 기존의 역사 유적과 유물 등 풍부한 1차원적인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역사 주제 공원 건설과 역사극 오페라 공연 등을 통한 전방위적인 문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카이펑시의 한 관계자는 "송나라 문화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려면 칭밍상허위엔에 와야 한다"며 "여기에 들어서면 송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도록 '송나라 문화공원'으로 더 제대로 가꾸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펑의 칭밍상허위엔(淸明上河園)
역사주제공원을 가장 먼저 건설한 곳은 카이펑이다.
카이펑이 송나라 수도로서 번성했던 시기는 11세기 중반. 당시 카이펑은 150만에 이르는 인구가 북적대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당시의 번성했던 시가지 모습은 당시 화가 장저두안(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청명상하도는 카이펑 시내의 수많은 상점과 도성안을 흐르는 네 곳의 수로와 다리, 배들의 움직임은 물론 그 속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800여명의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생동감 있게 그려 넣었다. 카이펑은 청명상하도에 나타난 당시의 수로의 위치 등을 발굴, 복원해서 송나라 시대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칭밍상허위엔(淸明上河園)이다. 1997년 건설된 송나라 주제 공원은 2001년 중국 정부가 부여하는 최고 등급인 AAAA급 국가 관광지로 선정됐다.
수백억원을 투자해 조성된 공원 곳곳에서는 송나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상주하면서 수시로 공연을 하고 당시 유행했던 투계(닭싸움) 경기나 마구는 물론 '따송둥징멍화'(大宋東京夢華)(송나라 카이펑의 꿈같은 영화)라는 대형 오페라 공연도 하고 있다. 이 공연은 고정된 무대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 곳곳 등 칭밍상허위엔 전역을 무대로 공연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원 전체를 다 돌아보는 데는 하루 온종일이 걸릴 정도로 넓다. 특히 카이펑성으로 꾸며진 입구를 들어서자 송나라 복장을 한 죄수가 끌려가는 공연과 성루 위에서 1시간마다 공연하는 중국식 악극, 간식 거리에서 펼쳐지는 저잣거리 공연 등 곳곳에서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항저우 송청(宋城)
"나에게 하루를 준다면 당신에게 천년을 돌려주겠다."
항저우의 역사주제공원 '송청'은 이처럼 '천년 전 송나라의 숨결'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처럼 중국인들은 항저우에서 쑤저우 미인을 데리고 사는 것을 지상 최고의 소원으로 생각할 정도로 이상적인 도시가 항저우다. 송청 역시 청명상하도를 바탕으로 건설됐다. 송나라 양식 그대로 중국 전통 산수 원림 기법에 따라 건물을 배치했다. 칭밍상허위엔에 비해 아기자기하고 밀도 있게 짜인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테마파크'식 공연까지 곁들이면서 송청은 항저우 관광의 인기있는 필수 코스의 하나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송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연이 대형 오페라(가무쇼) '송청첸구칭'(宋城千古情) 이다. 매일 밤 송청 내의 대형극장에서 펼쳐지는 이 송청첸구칭은 300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대형 공연으로 현란한 조명과 장치로 관객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공연은 남송시대의 영웅 악비(岳飛) 장군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악비 장군의 전투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무대를 향해 대포가 발사되는 등 특수효과도 볼 만하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늘어난 한국 관광객을 겨냥한 듯 한복 입은 여성들이 등장, 부채춤과 장구춤을 추는 장면도 삽입돼 있다. 이 오페라 제작에만 5천만위안(한화 약 100억원)이 투자됐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장대하다.
◆시안 '따탕푸롱위엔'(大唐芙蓉園)
카이펑과 항저우가 송나라 문화를 내세운 역사주제공원으로 다투고 있는 사이 시안은 2005년 '따탕푸롱위엔'을 건설, 당나라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역사테마파크 경쟁에 뛰어들었다.
시안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특히 당나라 때의 시안은 장안(長安)으로 불리면서 100만 인구가 몰린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대당 제국의 부활을 내세우면서 역사문화도시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하려는 시안의 야심 프로젝트가 따밍궁(大明宮) 복원과 따탕푸롱위엔 건설이다. 그중 따탕푸롱위엔은 자운루와 사녀관 방림원 등 웅장한 규모의 당나라 양식 건물로 구성한 테마 공원으로 시안 관광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주제 공원 조성에만 2천50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 특히 매일 저녁 이곳 푸롱위엔 중앙에 위치한 광대한 호수에서 내뿜는 분수와 레이저를 이용한 야경은 환상적인 분위기로 당나라의 영화를 재현하고 있다.
또한 따탕푸롱위엔의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대형 뮤지컬 '멍후이따탕'(夢回大唐·꿈속의 당나라)은 관광객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면서 마치 꿈속에서 당나라를 체험하는 듯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당현종과 양귀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따탕푸롱위엔이라는 대하드라마도 CCTV에서 방송되면서 따탕푸롱위엔은 중국인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은 명소로 떠올랐다. 따탕푸롱위엔은 당 현종이 양귀비와 사랑을 나눴던 정원이기 때문이다.
◆경주=그러나 신라천년 고도 경주에서는 중국의 시안과 카이펑, 항저우에서와 같은 역사주제공원과 대형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볼 수 없다. 선덕여왕 등 TV드라마는 방영되고 있지만 신라를 소재로 한 제대로 된 뮤지컬이나 오페라 한 편도 없다.
올해 단오절 때인 지난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강릉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신라에 복속시키면서 해양 대국의 꿈을 키운 신라장군 이사부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무사극이 공연된 적이 있다. 이사부 장군이 활동한 512년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무사극이었지만 중국의 대형 뮤지컬과 오페라처럼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드는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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