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소설가'시인의 존재 이유가 결국 사람에 대한 무한 애정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도가니』공지영 지음/창비 펴냄/294쪽/1만원

"바뀐 것은 정녕 아무것도 없다/있다면 어느새 넥타이로 갈아매고/혁명에 대한 뜨거운 열정 대신/상사의 눈치나 슬금슬금 곁눈질하는/반쯤 소시민이 된 우리들의 모습만 있을 뿐"-망월동에 다시 와서- 중에서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김용락 시집/창비 펴냄/138쪽/4천원

장대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오후, 서점에서 두 책을 고르며 소위 후일담(後日譚) 문학이 가지는 소시민적 감상주의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염무웅 교수의 말처럼 과연 "과거는 언제나 냉철한 반성의 대상이자 때로는 미화된 추억의 표상"일 수밖에 없을까? 해서 후일담 문학이 "현재적 관점 앞에 나약한 도구"로만 존재한다면 과연 문학이 가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저런 의문들은 서점의 나른한 오후를 깨우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처럼 세상은 여전히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후일담 작가라 불린 공지영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어 이번 작품을 통해 과거를 벗어나 현재에 발을 딛고 서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많은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도가니』에서도 "사람이 희망의 근거"라는 것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온갖 군상들이 세상을 폄하하고 거짓으로 덧칠해가고 있지만 그것은 실패도 진실도 아니며 그저 상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란 그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경이로운 것이기에 삶의 가치란 존재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분노에 몸을 떨며 책을 놓지 못하는 『도가니』는 왜 작가가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자리매김하는지를 보여준다.

김용락의 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그의 시는 사람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가득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인의 존재 이유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면 김용락은 분명 순결한 영혼을 지닌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변혁의 80년대를 지나 상실의 시대 90년대를 지나면서도 일관되게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은 거친 분노로 또 때로는 부드러운 손길로 세상의 상처들을 보듬고 어루만지면서 그의 말처럼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고자 노력했고 해야 할 일은 회피하지 않고 하려고 한" 시인이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자리에 어떻게 서 있었는가를 말하는 데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삶과 시는 얼마나 당당한 것인가. 선한 눈매와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시인의 시는 "한때는 꽃을 사모하였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욱 사무친다"는 말을 가슴에 되새기게 한다. 여전히 아직도, 아니 언제나 사람은 희망이다.

전태흥(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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