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재해석하고 있는 부산대 강명관 교수가 새로 펴낸 책이다. 지은이는 조선시대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통해 한국의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시비' 걸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조선시대 노비와 오늘날 비정규직은 닮은 구석이 있다. 훈장을 내쫓았던 조선시대 주민들과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학부모, 강사를 내모는 대학은 다를 바 없다. 가짜 어보(御寶)를 찍은 홍패를 팔아먹은 조선 사람과 신정아 가짜 학위 사건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 더 이상 노비제도는 없다. 자신과 가족을 파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노동력 외에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도서관마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그들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팔아야 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지은이는 탐관오리 불멸론부터 소인배 승승장구론, 소인배 등급론, 가짜론에 이르기까지 옛글에서 시작해 현대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비판을 통해 지은이는 돈과 권력, 학벌과 인척 관계로 결합한 21세기 대한민국은 정확히 19세기 조선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과거제도는 '합격증서'를 얻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다. 윤리적 성숙을 보장하는 지식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어떤가? 대학은 더 이상 진리나 윤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한 개인의 카스트를 정해주는 기관일 뿐이다. 세월은 변했지만 교육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사회와 한국 사회는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까. 부디 강명관 교수가 거는 '시비'가 틀렸으면 좋겠다. 296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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