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백 년만의 폭설 / 박이화

백년만의 폭설 내리던 해

유난히 털이 하얀 고양이 한 마리

내 집으로 찾아들었다

밤사이 기척 없이 내린 눈처럼

어디서 왔는지 알 순 없지만

한없이 지치고 고단한 도둑고양이가 되어

밤눈 같이 나즉이 내 품으로 안기어 왔다

언제나 춥고

고양이처럼 유독 외로움 잘 타는 나도 12월,

눈 오는 겨울 생이다

어쩌면 우리는 백 년 전쯤 함께 출발했다,

우연한 봄날

잠시 흩어졌던 눈발이었을까?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흰 눈은 고양이의 모습이다. 흰 고양이이기에 눈은 더욱 쉽게 고양이의 특징을 지닌다. 아마 검은 고양이라도 눈은 고양이 혹은 고양이의 상징체계가 되기에 거슬림이 없었으리라. 눈과 고양이의 털은 부드러움이란 측면에서 같은 종족이다. 踏雪無痕(답설무흔)은 눈에게도 해당되고 고양이에게도 해당된다. 고양이 발바닥의 근육은 도약과 착지를 위해 눈의 말랑말랑한 이미지에 자신의 탄력의 힘을 더해서 물질화시켰다. 게다가 눈처럼 고양이도 남몰래 오가는 도둑의 이미지, 왜 시인이 고양이의 눈에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의 눈을 박았는지 알겠다. 그 수많은 오버래핑 속에 전생과 후생 또한 눈처럼 난분분 뛰어들어와 뒤섞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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