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미정의 별이야기] 배우 이 정 재

서른 여섯, 여전히 불같은 사랑 꿈꾸죠

이정재(36)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다. 드라마 '느낌'의 쾌활한 막내로 90년대 오렌지족의 일상을 연기했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묵묵한 보디가드 역할로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그에게 첫 영화제 수상의 소감을 안긴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는 방황하는 청춘의 비루한 일상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하지만 이정재의 가장 큰 장기는 뭐니뭐니해도 비장감 넘치는 남성미다. 의리가 넘치는 수컷의 세계를 이정재만큼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기자는 드물었다. 송승헌'권상우의 등장 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몸짱' 연예인이기도 했던 그는 대표적인 '남자'연기자로 꼽혔다.

2000년대 들어 이정재는 변화를 추구했다. '시월애', '인터뷰', '선물'처럼 가슴 찡한 멜로와 '오 브라더스', '오버 더 레인보우' 류의 휴먼코믹물, '1724기방난동사건' 같은 퓨전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변주를 시도했던 그의 다음 선택은 스포츠 멜로를 표방한 MBC 수목드라마 '트리플'(극본 이정아 오수진, 연출 이윤정)이었다.

감정의 미세한 선율을 울리는 이윤정 PD와의 작업은 이정재에게 어떠한 변화를 안겨줬을까. 어느덧 촬영장의 맏형으로 드라마 홍보의 사운을 짊어진 이정재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눠봤다.

따갑게 쏟아지는 7월의 햇살을 등에 이고 땀을 뻘뻘 흘린 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의 드라마 세트장에 나타난 이정재는 데뷔 이후 요즘처럼 지탄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며 너털웃음부터 터뜨렸다. 시청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네티즌 반응임을 절감하고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드라마 '트리플'에서 광고회사 직원 '신활' 역을 연기하는 그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의붓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연기로 인터넷 상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동생 '하루' 역의 민효린과 입술까지 맞춘 최근 방송분은 그야말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네티즌들의 논쟁을 이끌었다.

"예상한 반응이었죠. 드라마를 찍기 전 대본을 봤을 때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윤정PD와 이정아 작가를 믿었어요. (사랑에 빠지는) 동기를 명확하게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랑에 수긍할 수 있게끔 만들자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의기투합했는데 우리의 의도가 잘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죠."

이정재는 '트리플'의 이 같은 러브라인은 이 작품이 '사랑'에 대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등장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하루와 활의 러브라인은 '키다리 아저씨'같은 미묘한 감정이 들게끔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감정을 겪어보지 않나요. 친한 친척오빠를 마음에 담아두거나 친구의 여자친구 때문에 가슴앓이 해보는. 사실 이런 스토리는 예전에도 많은 드라마에서 다뤘죠. 다만 이걸 감독과 작가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처음 캐스팅 됐을 때 이윤정 PD는 활과 하루의 관계를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밝고 예쁘게 그려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어요. 감독의 전작들을 지켜봤던 저는 이윤정 PD에 대한 믿음으로 흔쾌히 승낙했죠."

사실 이정재는 활과 하루

와의 관계보다 현태(윤계상 분)와 수인(이하나 분)의 관계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친구와 전처의 사랑으로 중간에서 곤경에 빠진 본인의 심경은 차치하고서라도, 행여 네티즌들의 악플로 인해 아끼는 후배 윤계상이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에서 맏형의 듬직함이 느껴졌다.

"처음 모니터링을 할 때 보니 계상이 캐릭터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수인에게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모습이 밉지 않고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던걸요. 일각에서는 계상의 러브라인이 불편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마도 계상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귀여운 이미지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어쨌든 그만큼 계상이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네요."

20살이던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정재는 데뷔 16년차의 '중견' 배우다. 20여 년 전과 변함없는 그의 외모 때문일까.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선 그의 나이를 깜빡 잊게 된다. 1973년생인 그의 나이도 올해 서른여섯. 어느덧 서른보다 마흔에 훌쩍 가까운 나이에 들어섰다.

긴 연예활동 기간 동안 이정재는 큰 스캔들이 없었다. 동료 탤런트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개 연애도 해봤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마흔을 바라보는 남자배우로서 결혼을 왜 안하는지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 (웃음)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하겠지만 나이가 찼다고 무작정 식부터 올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드물어요. 장동건, 정우성, 배용준 등등.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웃음)"

비단 연예인 동료들뿐만 아니라 학교 동창이나 동네 친구들도 결혼한 이가 적단다. 이정재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아무래도 여성의 사회적 기득권이 강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분석했다.

"과거와 달리 여성들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면서 예전보다 자신을 아끼고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예전처럼 결혼에 목매달고 가정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보다 발전적으로 자신을 개발하다 보니 결혼도 점점 늦어지죠."

서른여섯의 나이에 불같은 사랑을 꿈꾸는 것은 무리일까. 이정재는 "사람이 문제일 뿐 사랑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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