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녹색지대 사람들]사진가 이상일씨의 집 'open window'

담담하게…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집'은 사람을 담고 있기에 아름답다. 특히 예술가의 집은 더욱 그러하다. 그 속에는 예술가의 철학이 담겨 있고 예술이 태어나고 꽃핀다. 대구경북 인근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 획일적인 아파트가 아닌 자연 속에서 저마다 철학을 보여주는 집들은 예술가와도 많이 닮아있다. 앞으로 대구'경북의 예술가들의 집을 찾아 떠나보려한다. 집과 사람, 예술이 서로 닮아가는 모습을 찾아나선다.

흑백 사진 같은 사람이다.

길지 않은 시간, 세상의 온갖 고통과 질곡이 한 몸에 통과한 듯 이제 담담한 먹빛만 남은 느낌이다. 사진가 이상일(53)씨를 만난 느낌이 그랬다.

그의 집도 그를 닮아 담백하고 담담하다. 팔공산 파계사 가는 길, 대구 동구 중대동. 나무로 지어진 집이자 작업 공간은 제자들이 'open window'라는 이름을 붙여두었다. 열려있는 창문. 그의 집은 물과 바람, 그리고 사람을 향해 늘 열려 있다.

1999년, 그의 선배가 이제 제발 정착하라고, 사진 찍는 데에만 집중하라며 집을 지어줬다. 그는 외형은 물론 구도와 조경, 설계를 손수 했다. 그의 집은 단순하다. 세미나실'암실'생활공간으로 나누어지지만 내부에는 문이 거의 없다. 후배가 옛 집을 허문다고 해 오래된 나무들을 그대로 가져와 썼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나무들이 지붕도 되고 계단 난간도 된다. 나무가 따뜻하다. 수십년, 인간과 함께 살아서일까.

지금은 개인 사정상 본채는 팔고 별채만 사용하고 있다. 별채 옆에는 황토방이 있다. 한 도예가가 '황토방에 살면 자연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해서다. 그가 온전히 묵고 있는 방은 작은 황토방 하나다.

그는 요즘 부산 범어사에서 기거하고 있다. 안정된 '교수'라는 자리와 '사진가'가 그의 내부에서 맞부딪친 결과 경일대 사진학과 교수를 그만두었다. 그는 부산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범어사' 시리즈를 찍고 있다.

이렇게 좋은 집을 두고도, 그는 늘 세상을 서성이며 헤매고 있다. 덕분에 그의 육감은 늘 깨어있다. "최대한의 긴장이 최대의 안정이에요. 긴장하지 않으면 불안하죠. 갈 길은 먼데 멈춰선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그는 아날로그 흑백사진만 고집한다. 총천연색 디지털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그의 사진은 흑백을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다. '범어사' 시리즈는 불교철학에서 만물이 깨어난다는 '오전 3시'에 찍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너무 인간중심적 사진을 찍어왔다는 반성으로 그는 사물의 입장에서 사진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결과 1m×2m가 넘는 대작에는 어슴프레 돌들이 깨어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하면서 이처럼 대작을 직접 인화할 수 있는 기술도 희귀해지고 있다. 그의 집엔 그런 암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뭘까. 스스로 "공유하는 공간이지, 내 집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학생들과 합숙하며 강의를 하고 후배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동네 꼬마들에게도 인기 있는 집이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듣기 좋아 집 옆 흐르는 개울에 돌들을 쌓았더니, 비가 오고 구덩이가 파이면서 수영장이 되었다. 여름이면 그 집은 꼬마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의 인생은 서너 편의 영화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박하사탕', '실미도', '친구'. 그 영화들을 다 이어붙이면 그의 삶이 된다. 13세에 가출을 했고 스무 살, 특수부대에 차출돼 10년간 혹독한 군대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거기서 사진을 배웠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진압군으로 동원됐다. 명령과 복종만 존재하는 광주 한복판에서 그는 어렴풋이 의문을 느꼈고,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는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 후 사진을 전공한 그는 1989년 광주에서 망월동 시리즈를 발표한다. 광주사람들은 진압군이 아닌 사진가로 돌아온 그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는 그곳에서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이념과 계산을 걷어내고 '사람'만 보려는 습관은 이때부터 길러졌다. '어머니', '온산공단' 시리즈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동질감을 느끼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않는다. 함께 살다시피 해 피사체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가 되면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 사실, 그에게 있어 사진은 '타인'을 찍는 게 아니라 '타인 속의 나'를 찍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 시리즈들은 그를 우리나라 현대 사진계의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삶의 고통은 그의 눈을 통과해 인화지에 흑백으로 인화됐다. 누구보다 신산스러웠을 그의 삶은 하지만 그에겐 축복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좋았어요. 그 삶이 있었기에 지금 사진가인 내가 있는 거니까요."

7월의 달궈진 햇볕이 잘 가꿔진 잔디 사이로 쏟아진다. 풀벌레마저 숨죽인 무더운 여름날 그의 집 마당 한켠에서 그와 작별 인사를 했다. 비로소, 사연 많은 흑백 사진집 한 권을 닫는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가 이상일

경일대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7년 첫 번째 개인전인 '인간탐구'(대구 현대미술관)를 시작으로 '어머니 그 이름', '망월동' 등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1994년에는 사진 예술지 선정 '올해의 작가상'과 '2000년 광주 비엔날레 최우수 기획전상' 을 수상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