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제주다운 곳은 아무래도 '선녀와 나무꾼'과 성읍민속마을이다. 제주 속 제주를 보러 가는 날 아침 한라산은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제주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일 때는 불안하다고 한다. 예부터 아침 산이 또렷하면 밤에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동부쪽에 위치한 '선녀와 나무꾼'은 6만6천116㎡의 부지에 100억원을 들여 만들어 지난해 6월 문을 연 사설 민속박물관이다.
황토로 만든 사랑방 벽을 가르는 나무기둥 못에 교복을 걸어놓은 채 밥상에 책을 얹고 앉아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은 중'고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면소재지 시장통에 들어서자 그 시절 그 노래로 온통 시끌벅적하다. 장터의 함석지붕을 한 연탄가게'국밥집'다방'전파사'주막'서점 등도 있다. 구멍가게에는 양초와 아기 기저귀용 노란색 고무줄, 성냥, 연탄 착화탄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약속다방에서는 손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관광객들이 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종로이발소에서는 세 개의 의자 중 한 명이 고대기로 머리손질을 하는 동안 옆의 손님은 연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군다. 바로 옆 선술집 예산댁에는 장을 보러온 손님과 마담이 양은 주전자를 앞에 놓고 박장대소하고 있다. 물고기 잡는 도구와 해녀도구 등 자료를 전시한 어구전시관, 민속박물관, 어부생활관, 자수박물관, 닥종이인형관, 옛 학교 교실을 재현해둔 학교가는 길과 추억의 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가는 길에 가이드로부터 돌하르방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돌하르방의 오른손이 위에 있으면 문관(학자), 왼손이 위에 있으면 무관(건강한 사람)을 의미한다. 돌하르방은 왜 생겼을까. 제주의 심장인 한라산이 임신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드러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음기가 세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남자가 일찍 죽어 곡근마다 군데군데 남근석을 박아 여성의 기를 눌렀다고 한다. 이것이 보기에 흉하자 모자를 씌웠는데 그게 바로 돌하르방이 됐다는 것이다.
"이리옵서예, 보질보질옵서예." 성읍민속마을에서는 마흔아홉살 노총각인 이공옥씨가 안내를 맡았다. "이리 오세요. 빨리빨리 오세요"의 제주도 말이다. 제주의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 국가지정 보존마을 188호로 500여가구에 1천4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관광객들에게 하루 8가구씩만 개방한다. 지붕은 갈대 이엉으로 이었고 기둥의 수에 따라 집의 경제사정을 알 수 있다. 기둥이 많을수록, 조랑말 사육 두수가 많을수록 잘 사는 집이다. 여기서 조랑말에 대한 정보 한 가지. 조랑말은 눈이 여섯 개라고 한다. 두 눈 외에 4개 다리가 감각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는 현지인이 8개팀으로 나눠 관광객들을 맞아 마을을 속속들이 안내한다. 마을 입구 문빗장에서부터 전통 제주의 가옥의 구조, 난방방식, 그리고 상비약인 오미자 보관법, 똥돼지 사육법, 난방법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현재도 조랑말을 평균 20~30마리씩 키운다.
다음 코스는 섬 속의 섬, 우도. 성산포항종합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10분 거리, 국내 유인도 중 최대의 섬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천800여명이 살고 있는 이곳의 성별 비는 남자 4, 여자 6이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은 사자바위가 있는 해발 132m의 우도봉. 여기에서 성산일출봉을 보면 코뿔소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전체 면적의 70%가 농경지로 땅콩과 감자가 주작물이다. 논농사는 아예 없다. 고등학교가 없어 중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유학을 떠나기 때문에 유학생이 가장 많은 마을이다. 우도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은 모두 똑같다고 한다. 이발소가 한 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도의 도심지에는 금융가(농협과 마을금고)가 있고, 단란주점 한 개가 있는 유흥가도 있다. 이 같은 섬 내 투어 안내를 맡고 있는 버스 운전기사의 코믹성 설명에 관광객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서쪽 콧구멍동굴이 보이는 곳에는 냉커피를 마실 수 있는 다방과 음식점 등이 있다. 반어반농 마을로 한 달에 12일가량 나이든 해녀들은 수심 3~5m, 젊은층은 10~15m에서 물질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유일한 목욕탕은 한번에 3, 4명이 들어가면 꽉 찬다. 이것도 면사무소에서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만 운영한다. 나이든 해녀들은 오랫동안 물질을 하다 보니 수압 차이로 인한 만성두통으로 물질하지 않는 10여일은 병원을 찾는 게 일이라고 한다. 까망모래 해수욕장과 산호모래해수욕장 등 3개의 해수욕장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명품으로 벌써부터 비키니를 입은 S라인 여성들이 가득하다.
마지막 코스인 아트랜드는 광주 사람이 30년 동안 16만5천290㎡의 부지에 분재를 길러 보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분재원에, 대작의 미술관이다. 말 그대로 대자연 속 예술공원이다. 분재공원은 16만㎡로 950년생 주목, 700년생 모과나무, 250년생 곰솔, 130년생 소나무 등 평균 200년 수령의 키작은 분재들이 꽉 차 있다. 미술관에는 3월 오픈한 곳으로 5천호 크기의 녹담만설(김준호), 1천호 크기의 누드군상(박주하), 축제(이두식), 농악(이필언) 국내외 대작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시간이 나면 뒤편의 조각공원과 반달곰농원을 걸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성읍민속마을 안내 달인 이공옥씨
성읍민속마을 안내의 달인 이공옥씨는 현지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는 농사꾼이자 이곳 원주민이다. 이씨는 조랑말 20여마리를 키우며, 2만3천㎡(7천평)의 밭에서 더덕 농사를 짓고 있는 노총각이다. 마을사무소의 일도 거들고 있는 이씨에게 결혼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농촌 총각의 비애"라고 답한다. 스스로 "능력의 장애자"라고 말하는 그는 "결혼할 생각은 없고, 매주 한번 손님들을 맞는 날을 기다리며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얻는 게 많아 대리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육지에 가봤느냐"고 묻자 "자신이 없어 갈 생각조차 못해봤다"고 전했다. "배운 게 없어서요…. 바로 옆의 우도까지는 가봤지만 뭍에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제주다운 사람 이공옥씨는 "눈으로만 보고 말로 설명듣는 관광에서 탈피해 초가집에서 민박하면서 하루쯤 생활하는 체험관광을 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지원책이 마련됐으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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